호남지역에서의 내년 총선은 호남에서 ‘김대중(DJ) 전 대통령 사후(死後) 첫 선거’라는 데 의미가 크다. 13대 총선 이후 DJ의 막강한 영향권에 있으면서 민주당 깃발만 꽂으면 당선되는 곳이 바로 호남이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에 크게 기여했지만 정권의 핵심에서는 비켜나 있었던 호남은 지역 이해를 대변할 새 인물을 찾는 데 골몰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내년 두 선거는 호남 정치사에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 안철수 호남의 대안으로 부상
4∼8일 실시된 동아일보와 코리아리서치의 총선 D-5개월 여론조사에서는 부산 출신인 안철수 서울대 교수가 ‘호남의 대안’으로 급부상하고 있었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와 안 교수의 양자대결 구도에서 호남은 유일하게 70% 이상(70.8%)의 뜨거운 지지를 안 교수에게 보냈다. 지지세도 광주(73.3%) 전남(67.9%) 전북(71.9%)에서 고르게 나타났다.
‘내년 총선에서 안철수 신당이 창당될 경우 어느 후보에게 투표하겠느냐’는 질문에서도 43%(광주 45.9%, 전남 36.9%, 전북 47.2%)가 안철수 신당 후보를 꼽아 ‘민주당 등 야권 후보’ 지지율(23.9%)의 두 배 가까이나 됐다.
호남권에서의 ‘안철수 쏠림’에 대해 당장은 ‘돌출적 현상’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광주의 한 지방지 편집국장은 “호남 주민의 가슴속에 자리 잡았던 김 전 대통령이 사망한 이후의 상실감이 ‘안철수신드롬’으로 급격하게 이어졌다”며 “호남 출신인 정동영 정세균 의원 등이 비전과 철학을 보여주지 못한 것도 원인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전남대 ‘386 운동권’ 출신의 사업가 신모 씨(46)도 “호남권 차세대 주자의 부재가 안철수라는 대안을 모색하게 만든 원인”이라며 “앞으로 더욱 강한 흡인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젊은층은 이런 현상을 ‘정치 패러다임의 변화’로 해석한다. 전남대에 재학 중인 소중한 씨(철학과 4년)는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거치면서 젊은층 사이에서는 시민정치에 대한 믿음이 커졌다”며 “기존 정당 체제에서 시민사회 쪽으로 정치의 중심축이 바뀌면서 안철수 열풍이 불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한나라당으로서는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이 호남에서 두 자릿수(광주 12.5%, 전남 14.5%, 전북 12.9%)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 위안을 얻었다.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후보는 호남에서 92.3%를 얻었지만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4.9%를 얻는 데 그쳤다. ○ 광주·전남도 현역 물갈이론 강해
본보 조사에서 호남 응답자의 54.9%는 ‘민주당 현역 의원이 대폭 물갈이돼야 한다’고 답했다. ‘인위적 물갈이에 반대한다’는 의견은 절반 수준(28.5%)에 그쳤다. 여수에 살고 있는 성현준 씨(30)는 “민주당을 지지해 왔지만 정치 행태에 실망했다. 내년 총선 때는 정당이 아닌 인물을 보고 뽑겠다”고 말했다. 광주에 사는 회사원 김모 씨(40)도 “호남 정치인은 한마디로 ‘그 나물에 그 밥’”이라며 “이제는 참신한 정치 신인을 뽑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 택시운전사 박모 씨(50)는 “내년 총선에서는 혈연 학연 지연 등 구태 정치의 연결고리를 끊고 새 인물을 뽑아야 한다는 열망이 어느 때보다 강하다”며 “민주당이 제1야당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못한 탓도 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역에서는 초선이지만 당 대변인으로서의 입지를 굳히고 있는 이용섭 의원(광산을)을 제외한 나머지 광주 의원들은 공천받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지역 현안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는 평가 때문이다.
광주=김권 기자 goqud@donga.com 목포=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여수=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 박근혜 측근 이정현, 광주서 금배지 달 가능성은? ▼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최측근인 이정현 의원(한나라당 비례대표)의 19대 총선 광주 출마가 지역 정가에서는 큰 화제다. 전남 곡성 출신으로 광주살레시오고를 졸업한 뒤 1992년부터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에서 당직 생활을 해온 이 의원은 광주 서구을 출마를 공식 선언한 바 있다. 이 의원은 “민주당 의원보다 호남을 더 챙긴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지역 이익을 대변하는 데 힘을 쏟아왔다.
그러나 광주-전남에서는 1988년 13대 총선 이후 한 차례도 한나라당과 그 전신(민정당, 신한국당) 후보가 당선된 적이 없다. 이 의원의 도전이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운 이유다. 이 의원은 이미 17대 총선 때 서구을에 출마해 출마후보 6명 가운데 꼴찌라는 참담한 패배를 맛봤다.
동아일보의 4∼8일 호남 여론조사에서도 이 의원의 당선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의원의 출마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당선 가능성은 낮다’는 응답은 48%로, 출마 자체에 부정적이라는 응답(20.6%)과 합치면 70%가량이 당선에 비관적이다. 광주에서는 ‘출마에 긍정적이지만 당선이 어려울 것’이라는 응답이 53.2%로 더 많았다. ‘당선 가능성이 높다’는 응답은 호남 전체에서 7.1%(광주 8.9%)에 불과했다.
한 광주 시민은 “연애와 결혼은 다르지 않으냐. 이 의원에 대한 평가가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선거 때는 결국 민주당 후보를 찍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광주 서구에 사는 한 퇴직 공무원(63)은 “‘이정현 한 명이 민주당 의원 10명보다 낫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 의원이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을 유권자들이 잘 알고 있다”고 지지 의사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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