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선거에서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해 온 충청지역은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도 가장 큰 관심 지역으로 꼽힌다. 충청 민심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여론조사기관에서 전화하면 “옆집은 뭐래유?” 한다는 유머가 있을 정도로 선거 막판에야 속마음을 드러낸다.
동아일보와 코리아리서치가 4∼8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충청권의 민심이 아직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충청권의 민심을 가장 잘 대변하는 정당’을 묻는 질문에 민주당 21.4%, 자유선진당 19.4%, 한나라당 15.6%라는 답변이 나왔다. ‘한나라당에는 실망했고 그렇다고 민주당이 좋은 것도 아니고, 자유선진당은 대안이 되기 어렵다’는 것이 충청 민심의 실체라는 것이다.
대전·충남지역은 16개 의석 중 자유선진당이 13석, 민주당 2석, 한나라당 1석을 갖고 있다. 자유선진당은 “불안하긴 해도 총선 민심은 다시 한 번 선진당을 선택할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지만 당장의 총선 여론은 우호적이지 않다. 특히 지난달 충남 서산시장 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되면서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다.
본보 조사에서 ‘현역 의원에게 투표하겠다’는 응답은 22%로 ‘다른 인물에게 투표하겠다’는 응답(37.3%)의 절반 수준에 머물렀다. ‘자유선진당 의원들이 지역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전·충남 응답자의 72.9%가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다보니 충청권 역시 새로운 대안에 목말라 있는 상황이다. 2009년 정부의 세종시 수정 추진을 무산시킨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한 지지세가 강한 편이지만 안철수 서울대 교수에 대한 호감도도 높은 편이다.
본보 조사에서도 안철수 서울대 교수가 급부상한 이후 두 사람의 지지율은 박빙 추세를 보이고 있다. 내년 대선 후보 양자대결 구도에서 충청권은 박 전 대표(44.2%)와 안 교수(41.1%)가 오차범위에서 접전 중이다.
총선에서는 박 전 대표가 당권을 장악하고 있는 한나라당보다 안철수 신당 지지율이 높았다. 본보 조사에서 안철수 신당 후보에게 투표하겠다는 응답은 대전·충남에서 35.8%로 자유선진당 민주당 등 야권 후보 지지율 19.5%의 2배 가까이 됐다. 한나라당 후보 지지율은 25.1%였다. 대학생 이장석 씨(25·목원대 언론홍보학과)는 “기성 정치인과 정당에 대한 불신이 젊은층 사이에서 극도로 팽배해진 것은 사실”이라며 “기존 인물은 믿지 못하니까 새 인물, 새 정당에 대한 갈망이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김경덕 씨(48·대전 서구 둔산동)는 “지역경제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세종시가 사실상 반쪽으로 건설되고 있는 데다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자유선진당이나 한나라당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지 않았느냐”며 “제3의 대안 정당과 새 인물로 관심이 옮겨가는 것이 정상”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세종시를 구한 박 전 대표 바람에 희망을 걸고 있다. 특히 총선 전에 충청 민심이 박 전 대표냐 안 교수냐를 정해 총선에서도 표를 줄 가능성이 있는데 아직은 안 교수 바람이 구체화되지 않았고 박 전 대표의 지지세는 비교적 견고해 총선 때 큰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해석이다.
위기를 느낀 선진당은 변화를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이회창 전 대표가 심대평 전 국민중심연합 대표에게 당권을 넘겨준 것도 위기감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안철수 쓰나미에 휩쓸릴 경우 자칫 총선 이후 실체가 사라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정부의 세종시 수정 추진에 반발해 충남지사직을 내놓은 이완구 전 지사도 내년 총선 출마를 공식화한 뒤 본격적인 행보에 나섰다. 이 전 지사는 전화통화에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정치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지사직을 사퇴한 뒤 다시 총선에 출마하기로 결심한 것은 단순한 개인 차원이 아니라 충청권의 큰 역할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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