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와 한나라당은 16일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유예 및 폐기 협상을 문서로 만들어야 한다”며 민주당이 이명박 대통령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관련 제안을 사실상 거부하자 부글부글 끓었다.
청와대 박정하 대변인은 이날 “대통령으로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국회 논의를 조금 더 지켜보겠다”며 일단 표면적으로는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청와대 참모들 사이에선 “해도 너무한다”는 반응이 주류였다. 한 참모는 “일국의 대통령이 국회를 직접 방문해 1시간 20분 머물면서 제1야당 대표에게 직접 뜻을 밝혔고, 배석한 홍보수석비서관이 전체 언론에 공식 발표했다”며 “이런데도 미국의 문서를 받아오라는 건 황당하다”고 말했다. 민주당을 “사대주의”라고 비난한 참모도 있었다.
한나라당은 더욱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홍준표 대표는 이날 황우여 원내대표 등과 긴급회의를 가진 뒤 “양국의 책임 있는 분들이 재협상한다고 하면 그것으로 끝난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김기현 대변인도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에 대한 결례의 도를 넘어 모욕에 가까운 것”이라고 비판했다. 홍 대표와 당 소속 재선 의원들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한 의원은 “몸싸움이 아니라 총싸움까지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당장 한나라당은 17일 의원총회를 열어 한미 FTA 비준안의 24일 강행 처리 방안을 본격적으로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의 협상이 더는 불필요하며 169석의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비준안에 대한 표결을 시도해야 한다는 주장이 당내에서 힘을 얻고 있다.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을 위해 필요한 심사기일을 수차례 지정해 명분을 쌓은 뒤 처리하자는 의견까지 나온다.
그러나 협상파로 분류되는 45명을 끌어안지 않으면 비준안 처리 조건인 전체 재적의원(295명) 과반수(148명 이상)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한나라당의 고민이다. 실제로 당내 협상파 의원 일부는 이날 긴급회동을 갖고 합의 처리 노력을 끝까지 해야 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흘째 단식 중인 정태근 의원은 “FTA 정상 처리를 위해 노력해온 분들이 구체적 액션플랜을 갖고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그때까지 한나라당이 서두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데 공감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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