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 대책회의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2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이 통과된 뒤 김진표 원내대표, 정동영 최고위원,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 등과 함께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민주당은 22일 한나라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강행처리하는 데 속수무책이었다. 손학규 대표 등 강경 지도부가 “결사저지”를 외치며 단단히 별렀던 것과는 딴판이었다.
한나라당 의원 130여 명이 오후 3시 기습적으로 국회 본회의장에 입장했을 때 손 대표, 김진표 원내대표를 비롯한 30여 명의 민주당 의원들은 국회 의원회관에 있었다. 오후 2시 반과 오후 3시 각각 김성곤, 강창일 의원의 출판 기념회가 예정돼 있었기 때문. 당내 협상파의 대표 주자 격인 김 의원의 출판기념회에는 한미 FTA 주무 상임위인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원장인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도 참석했다. 김 의원이 출간한 책 제목은 ‘평화-일치와 상생, 희망을 향한 동행’. 강 의원의 출판기념회에서 축사를 하려던 손 대표는 오후 3시 10분경 쪽지를 받더니 얼굴이 일그러졌다. 쪽지엔 ‘한나라당 의원들, 본회의장 입장, FTA 강행 처리할 듯’이라고 적혀 있었다. 손 대표 측은 “완전히 허를 찔렸다”고 했다.
김유정 원내대변인은 브리핑에서 “한나라당이 완전 날치기 시나리오를 준비해놓은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당내에선 손 대표 체제에 대한 책임론이 제기될 조짐이다. 당내 협상파의 중재에도 불구하고 손 대표가 ‘ISD 폐기 또는 유보를 위한 미국과의 재협상에 즉각 착수한다는 서면 약속을 받아오지 않는 한 처리할 수 없다’는 주장을 펴면서 사실상 ‘타협은 없다’는 태도로 일관했다는 점에서다. 협상파의 서명운동을 중단시키기도 했다. 그렇다고 FTA 자체를 반대한 민주노동당 등 그가 강조한 ‘통합 파트너’들의 요구도 수용하지 못했다. 이날 의총에서는 장세환 의원 등 6명이 손 대표에 즉각 사퇴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뜩이나 신당 창당 문제로 당내 상당수 의원들로부터 반발을 산 상황이란 점도 곤혹스럽다. 사상 초유의 국회 본회의장 최루탄 투척을 한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이 ‘야권연대’를 내세운 손 대표의 ‘민주당 무공천’ 방침에 힘입어 당선된 의원이란 점도 상당한 부담이다. 4·27 전남 순천 보궐선거 당시 순천에선 거물급 인사 6명이 민주당 후보로 나섰으나 손 대표는 민노당과의 ‘야권연대’를 내세워 후보 공천을 포기했다.
일각에선 민주당이 적극적인 몸싸움을 하지 않은 데에는 “국회 폭력에 대한 국민들의 혐오를 감안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FTA 강력 저지 의지가 부족했다는 지적도 있다. 강경파 좌장 격인 정동영 최고위원만 해도 곽노현 서울시교육감(구속 수감) 면회를 가느라 한동안 국회를 비웠다.
한편 2008년 외통위 사건 때 ‘공중부양’ 등을 했던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은 이날 본회의장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강 의원은 지역구인 경남 사천에서 ‘한미 FTA 비준안 저지’를 위한 홍보 활동을 하다 한나라당의 단독 처리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그는 오후 6시 40분경 국회에 도착해 민주당 민노당 의원들이 농성에 돌입한 본회의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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