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어긴 예산안 처리시한… 9년째 ‘위헌 국회’ 오명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30일 03시 00분


■ 12월 2일 처리 물건너가

내년도 정부 예산안의 법정 처리시한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헌법 제54조에는 ‘국회는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예산을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회계연도가 시작되는 1월 1일의 30일 전인 12월 2일까지 예산안을 통과시키는 것은 국회의 의무사항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국회는 의무를 저버렸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처리한 22일 이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계수조정소위가 파행을 겪고 있어 법정시한 내 처리가 불가능해진 탓이다.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지금까지 국회는 단 한 차례도 헌법을 지키지 않았다. 올해로 ‘위헌 국회’가 9년째다.

○ 강온 양면책 쓰는 한나라당


계수조정소위 위원장인 한나라당 정갑윤 의원과 한나라당 자유선진당 소속 계수조정소위 위원들은 29일 국회 예결특위 위원장실에서 간담회를 열어 민주당 소속 위원들이 불참하더라도 12월 1일부터 예산 심사에 들어가기로 의견을 모았다. 민주당의 반발을 우려해 여야간 이견이 없는 예산부터 심사하겠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정기국회 회기가 끝나는 9일 이전에 예산안을 통과시키려면 최소 일주일의 심사기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한나라당 소속 계수조정소위 위원들은 30일 기자회견을 열어 민주당의 참여를 거듭 요청키로 했다.

한편으론 ‘화해의 손짓’도 보내고 있다. 정 위원장이 29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단독처리나 날치기처리는 다음 문제이니 일단 예결특위에서 충분히 심사를 해놓자고 (야당 의원들에게) 제의했다”고 밝히자 황우여 원내대표는 “단독처리는 생각도 안하고 있다”고 못 박았다.

○ 등원 반대 속 홍재형 등 복귀론

민주당 김진표 원내대표는 의원총회에서 “한나라당이 예산안 처리를 압박하지만 민주당은 국민과 함께 날치기 FTA의 무효화 투쟁을 더욱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그러나 당내 ‘어른’으로 통하는 홍재형 국회부의장은 원내대책회의에서 “제1야당인 민주당은 국회에서의 본분을 지켜야 한다”며 예산심사 복귀를 촉구했다. 홍 부의장은 “한미 FTA 무효화 투쟁은 계속돼야 하지만 국회에서 우리의 본분을 지키는 일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라며 “이번에 한나라당의 예산안 날치기를 막지 못한다면 국민은 민주당에 걸고 있던 한 가닥의 희망마저 거둘지 모른다”고 말했다. 의원들 사이에선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역구 예산을 챙겨야 한다’는 현실적 고민도 적지 않다.

전남 시장·군수협의회는 이날 민주당의 예산국회 참여를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들은 결의문에서 “민주당은 내년 예산 처리를 한나라당에 맡겨두지 말고 책임 있는 행동으로 국가 균형발전을 위한 예산을 챙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운태 광주시장과 박준영 전남도지사도 전날 성명을 내고 민주당의 등원을 촉구했다.

○ ‘오명의 역사’ 새로 쓰는 국회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예산안 처리 지연에 민감한 것은 국회가 중앙정부 예산을 붙잡고 있으면 지자체 예산 반영도 그만큼 늦어지기 때문이다.

예산안 처리가 지연되면 정부 사업의 수혜자인 서민들이 직접 피해를 본다. 국가사업의 경우 통상 예산배정에 7일, 사업공고와 계약 등 사전 준비에 15일, 자금 집행에 7일가량이 걸린다. 시중에 돈이 풀리기까지 평균 30일 정도가 필요한 것이다.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예산을 통과시키도록 한 것은 이런 현실 때문이다.

하지만 1988년 13대 국회부터 올해까지 24년간 국회가 예산안의 법정 처리시한을 지킨 것은 단 여섯 번뿐이다. 이 중 세 번은 대선이 있는 해였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이남희 기자 ir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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