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민주주의 대공황을 넘자]한국 민주주의, 죽어야 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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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大恐慌). 말 그대로 대공황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이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단 하나는 두려움 그 자체”라며 헤쳐 나온, 그런 유의 경제 대공황이 아니다.

2500년 전 페리클레스가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산정에서 세웠던 다수결의 원리가, “대표 없이 과세 없다”는 근대 영미(英美)의 전통이 일군 대의민주주의가, 피비린내 났던 프랑스 대혁명 이후 유럽에서 꽃피운 정당 정치가, 1987년 6월 서울의 함성이 쟁취한 직선 대통령제가 밑바닥부터 흔들리고 있다. 이른바 ‘민주주의 대공황’이다.

특히 짧은 시간에 민주화를 달성한 ‘민주주의 우등생’ 한국이 중병을 앓고 있다. 오랜 권위주의 체제의 청산과 함께 개막된 ‘1987년 체제’가 사반세기 만에 중대 기로에 섰다. 헌정 질서의 상징인 국회 본회의장에서 사상 초유의 ‘최루탄 테러’가 자행돼도, 공권력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경찰서장이 시위대에 맞아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선 괴담들이 무한대로 재생산돼도 기성 정치는 속수무책이다.

사실 기성 정치에 대한 도전은 전 지구적인 현상이다. 기존 자본주의는 이제 사회 경제 문제의 해답이 되지 못하고, 그 자본주의를 토양으로 열매 맺은 민주주의가 세계 곳곳에서 흔들리고 있다. 한신대 윤평중 교수(철학)는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가 급격하게 무너지고, 무능한 정치에 대한 피로 현상으로 정치의 통제 기능이 상실됐다. 전 지구적인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이 극대화되는 상황이 1929년 대공황을 연상시킨다”고 분석했다.

이런 가운데 내년은 한국은 물론이고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4강을 비롯해 세계 각국에서 정치권력의 교체가 예정돼 있다. 그야말로 ‘글로벌 파워 시프트(지구적 권력 대이동)’다. 이 엄중한 순간에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역시 대공황을 맞아 추락할지, 아니면 ‘앙시앵 레짐(구체제)’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민주주의로 도약할지 갈림길에 서 있다. 그 갈림길의 중대한 이정표가 내년 총선과 대선이다.

동아일보는 1일부터 ‘2012 민주주의 대공황을 넘자’ 시리즈를 연재해 한계에 이른 한국 정치의 현실을 진단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본보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20∼50대 1000명을 대상으로 11월 23∼25일 실시한 휴대전화 임의전화걸기(RDD)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 사회에서 기성 정당정치에 대한 불신과 실망감은 가히 ‘분노’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당정치와 대의민주주의에 대해 부정적 평가는 82.2%로 긍정적 평가(15.0%)의 5배 이상으로 나타났다. 이는 진보 성향으로 알려진 20∼40대뿐 아니라 보수층이 많은 50대까지 차이가 없었다. 현재 한나라당-민주당의 양당 구조가 변화해야 한다는 데에 대해서도 70.9%가 공감한다고 답변했다.

1 대 99 양극화에 대해서도 81.8%가 공감을 나타냈다. ‘공정사회’를 내세운 이명박 정부였지만, 이 정부 들어와 우리 사회의 투명성, 공정성이 진전됐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47.3%가 후퇴했다고 답했고, 진전이 있었다는 응답은 14.5%에 그쳤다.

현실 변화를 선도하기는커녕 뒤따라가지도 못하는 기성 정치체제가 심각한 존립 위기를 맞고 있는 현실이 수치로 확인된 것. 전문가들은 2012년을 단순한 권력교체가 아니라 새로운 민주주의 체제의 기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를 위해선 ‘공존’과 ‘공동체’, ‘소통’과 ‘나눔’, ‘행복’과 ‘희망’ 등을 키워드로 정치가 완전히 거듭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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