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與 지도부 7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홍준표 대표, 황우여 원내대표, 이주영 정책위의장(오른쪽부터) 등 당 지도부가 의총 사회를 맡은 황영철 원내대변인(뒷모습)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공룡’ 한나라당이 서서히 가라앉고 있다. 뱃머리는 아직 물 위에 있지만 다시 배를 띄우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일단 홍준표 대표는 버티기에 들어갔다. 지난달 29일처럼 ‘재신임 배수진’을 통해 다시 한 번 의원들의 신임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홍 대표가 버티면 버틸수록 당은 갈등의 소용돌이로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 ‘영리한 준표 씨’ 이번에도 통할까
7일 유승민 원희룡 남경필 최고위원이 동반 사퇴한 뒤 열린 의원총회는 지난달 29일 의총을 빼닮았다. 의총이 시작되자 홍 대표가 먼저 승부수를 던졌다. 그는 “지도부 퇴진 문제는 몇 사람의 목소리에 의존하지 말고 (소속 의원) 169명 전원이 의견을 표명해 결정해야 한다. 오늘 시간이 모자라면 내일과 모레도 의총을 열어 결론을 내달라”며 자리를 떴다.
지난달 29일 의총에서 자신의 퇴진과 박근혜 전 대표의 조기 전면 등장을 ‘패키지’로 묶어 의원들로부터 재신임을 받아낸 전략을 다시 한 번 활용한 셈이다. 다만 재신임 이후 같은 당 소속 최구식 의원 비서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디도스(DDoS·분산서비스거부) 공격’이란 돌발변수가 등장한 만큼 홍 대표는 그때보다 더 비장한 모습이었다.
홍 대표는 의총에서 “대표가 된 후 5개월 동안 빈 솥단지를 끌어안고 한숨을 쉬며 솥단지를 어떻게 채워야 할지 고민해 왔다. 애초 계획은 예산국회를 마칠 때까지 정책 쇄신에 전력을 다한 뒤 시스템 공천을 통해 천하의 인재를 끌어 모아 내년 2월 중순 재창당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재창당 때까지 대선후보들이 전면에 나올 수 있도록 당권-대권 분리조항을 개정할 생각이었다”고 덧붙였다. 자신의 ‘쇄신 플랜’을 제시하며 재신임해 달라고 요청한 셈이다.
홍 대표는 8일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이 그동안 준비해 온 20여 건의 쇄신안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 측근은 “청와대와 아무런 교감 없이 당 대표가 거취 문제를 결정하겠느냐”면서 “거취 문제는 완전히 결론나지 않았지만 일단 쇄신안 발표로 간다. 혁명적인 쇄신안이다. 박 전 대표가 쇄신안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 일단 재신임은 다시 받아냈지만…
홍 대표는 2007년 4월 상황을 ‘케이스 스터디’했다는 후문이다. 당시 한나라당의 4·25 재·보궐선거 참패 이후 강창희, 전여옥 두 최고위원은 동반 사퇴를 한 뒤 강재섭 대표의 사퇴를 압박했다. 하지만 강 대표는 “1만 명이 넘는 당원이 나를 대표로 뽑아줬는데 무책임하게 그만둘 수 없다”며 버텼고, 대선 경선을 성공적으로 치러내며 임기를 마쳤다.
홍 대표는 이날 의총에서도 “나는 자리에 연연하거나 집착하지 않는다. 당 대표가 됐을 때 헌신하겠다는 각오를 했다”고 말했지만 당시 상황을 거론하며 대표직을 지켜내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보여줬다.
의총 분위기는 홍 대표에게 우호적이었다. 처음 발언에 나선 정두언 원희룡 남경필 의원은 홍 대표의 사퇴를 요구했지만 이후 대다수 의원이 “대표가 당 쇄신안을 책임지고 추진하라”고 요구했다. 특히 박준선 의원은 “최고위원직 사퇴는 무책임하다. 한나라당의 위기는 의원 전원의 책임이다. 열린우리당이 그렇게 하다가 망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118명이 참석해 21명이 발언한 이날 의총에서 다수 의견에 따라 홍 대표는 재신임을 받았다.
○ 당내 혼란은 더 가중될 듯
홍 대표에 대한 ‘2차 재신임’이 위기의 한나라당을 구해내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당장 한나라당의 최고의결집행기구인 최고위원회의의 멤버 9명 가운데 4명이 빠져나갔다. 그것도 선출직 2∼5위 최고위원이 모두 최고위원직이나 의원직을 사퇴했다. 홍 대표와 지명직 최고위원 2명,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만 남은 상황에서 현 지도부가 당의 쇄신을 끌고 가기는 힘들다는 의견이 많다. 쇄신안을 추진하려면 수많은 당 안팎의 반발을 이겨내야 하는데 홍 대표 혼자 감당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또 전날 ‘당 해산 후 재창당’을 요구한 김문수 경기도지사, 이재오 전 특임장관, 정몽준 전 대표의 측근 의원 10명이 홍 대표를 계속 흔들 가능성이 크다. 이들은 이날 저녁 별도 모임을 갖고 대책을 논의했다. 유승민 최고위원이 사의 표명을 번복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 일부 친박계 인사는 차제에 박 전 대표가 전면에 나서는 게 낫다고 생각하고 있다.
원희룡 최고위원은 “(홍 대표가) 두세 발짝도 나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고, ‘재창당 요구 10인’ 멤버인 안형환 의원은 “상당수 지도부가 빠져나간 상황에서 혁신이나 쇄신을 할 수 있겠느냐.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여기에 ‘선도(先導) 탈당’ 움직임까지 보이는 쇄신파가 가세하면 당의 분당 위기감이 고조될 수 있다.
한나라당의 핵심 관계자는 “홍 대표가 버티면 버틸수록 당내 갈등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며 “일부 의원의 탈당 움직임도 본격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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