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A] ‘잠금해제 2020’…아버지는 살아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16일 13시 56분



1950년 7월 6일 의사였던 이형호 씨(당시 44세)는 서울 성북구 돈암동 집 앞에서 아무 이유 없이 북한군에게 납치됐다. 6·25전쟁이 끝나도 가족들은 생사를 확인할 수 없었고, 대한민국 정부는 60년이 넘도록 그를 산 사람도, 죽은 사람도 아닌 '없는 사람'으로 취급했다. 남은 가족들에게는 가장을 잃은 슬픔 위에 정부에 대한 배신감까지 더해졌다.

채널A의 심층·탐사보도 프로그램인 '잠금해제 2020'이 16일 오후 9시 20분, 6·25전쟁 이후 60년이 넘도록 고통 받아 온 전시 납북자 가족들의 가슴 아픈 사연을 보도한다.

정부는 지난해 말 6·25전쟁 당시 민간인 납북의 진상을 규명할 특별법을 제정했고, 국무총리 산하에 6.25전쟁납북자진상규명위원회를 꾸렸다. 이 위원회는 8월에 55명을 전시 납북자로 공식 인정한 데 이어 이달 12일에 217명을 추가로 선정 발표했다. 이는 북한이 6.25전쟁 당시 강제로 끌고간 민간인 납북자 8만여명의 0.5%도 되지 않는다.


김일성은 북한 체제를 공고히 하고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기 오래 전부터 대한민국 지식인 납치 계획을 치밀하게 세웠던 것으로 드러났다. 전쟁 중 북으로 끌려간 이들중에는 손기정 선수의 베를린 마라톤 우승 소식을 전하며 사진 속 일장기를 지운 동아일보 이길용 기자, 우리나라 최초의 서사시 '국경의 밤'을 쓴 김동환 선생,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 위원장을 지낸 김상덕 선생, 3·1절과 광복절 노래 등을 작사한 위당 정인보 선생 등이 있다.

이들은 모두 지식인 계층으로 대한민국의 독립과 건국 과정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전쟁 이후 이들을 외면했다. 특히 박정희 정권 등장 이후 반공 이데올로기가 대한민국 사회를 지배하면서 납치된 인사들에게는 '월북'이라는 멍에가 씌워졌다. 남은 가족들에게는 연좌제의 고통이 뒤따랐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는 남북관계가 해빙무드로 접어들면서 전시 납북자 가족들도 북으로 끌려간 '아버지'들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이들을 또 다시 외면했다. 전쟁 중 민간인을 납치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북한의 눈치 보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납북자 가족들은 자체 모임(6.25납북인사가족협의회)을 만들어 정부를 압박하기 시작했고, 국제사회에도 도움을 요청했다.

전쟁 중 북으로 끌려간 사람들이 살아 있다면 대부분 100세를 훌쩍 넘긴 나이. 생존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가족들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1950년 6월에서 9월 사이 그 어느 날에서 한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동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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