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시대정신, ‘성장경제’서 ‘공존경제’로
정치학자 등 전문가-여야 핵심 브레인 22명 설문
19일로 꼭 1년 앞으로 다가오는 2012년 12·19 대통령선거에서는 2007년 대선과 마찬가지로 경제가 선거의 흐름을 좌우하는 핵심 의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5년 전 ‘747 공약’(7% 경제성장,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달성, 7대 경제대국 진입)으로 대표되는 경제성장에 대한 기대가 이명박 대통령을 탄생시킨 것과 달리 이번에는 분배와 복지, 경제 정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공존경제’가 대선의 화두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동아일보가 18일 정치학자 등 전문가와 여야 전략 전문가 등 22명에게 대선을 관통할 시대정신과 차기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자질, 대선의 승패에 영향을 미칠 주요 요인과 이슈에 대해 물어본 결과다. 내년 대선에선 이러한 시대정신의 변화를 정확하고 빠르게 읽고 구체적인 해법을 내놓는 후보가 유권자의 최종적인 선택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 경제의 패러다임 변화
설문에 응한 전문가들은 시대정신을 ‘미래를 전망하는 집약적 가치’(이현출 국회 입법조사처 정치의회팀장) ‘시대 과제를 관통하고 포괄하면서, 반드시 해야 하지만 이뤄보지 못한 가치’(김형준 명지대 정치학 교수)로 정의했다. 그러면서 22명 중 12명이 내년 대선의 시대정신으로 경제문제를 들었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양극화 해소’, 강장석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는 ‘분배의 정의’, 박선숙 민주당 의원은 ‘일자리’를 시대정신으로 들었다. 이는 모두 ‘경제의 영역’으로 수렴되는 개념이다.
5년 전 ‘경제 살리기’를 내세운 성장 중심의 경제 문제는 시각 자체가 달라졌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이 대통령의 경제가 20세기형 경제였다면 이제는 21세기형 경제 개념이 시대정신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 소장은 “경제라는 시대 흐름은 세계적으로 거의 비슷할 것”으로 내다봤다. 김형준 교수도 내년 세계 경제가 나빠지는 상황에서 공존성장과 공존자본주의가 시대정신이며 △사회양극화 해소 △일자리 창출 △비정규직 문제 해결이 시대적 과제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복지’를 시대정신으로 전망한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정치체제에 대한 담론에서 보다 미시적인, 개인에 대한 담론으로 포커스가 바뀌고 있다”며 “생활의 정치, 행복 등 개인의 직접적인 삶과 연결된 것이 키워드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복지도 공급(정부)이 아닌 수요(개인)의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 양극화 해소-일자리 해법이 내년 대선의 승패 가른다 ▼
보수 성향의 이석연 변호사도 “시대정신은 이제 국민들이 실제로 피부에 와 닿는 걸로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김현철 한나라당 부설 여의도연구소 부소장과 한나라당 정책통인 나성린 의원은 여전히 성장에 우선순위를 뒀다. 나 의원은 “경제 살리기가 가장 중요한데, 일자리 창출을 위해 경쟁력을 키우고 경제를 활성화하면서 복지를 강화해야지 복지만 생각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대선에서 부각될 이슈로는 경제 위기와 세대·계층 간 갈등을 꼽은 응답자가 가장 많았다. ○ 차기 대통령 자질
전문가들은 차기 대통령이 갖추어야 할 제1자질로 소통 능력을 압도적으로 많이 꼽았다. 이는 이명박 정부 내내 문제점으로 지적받은 ‘불통의 리더십’에 대한 반작용으로 해석된다.
한나라당 나 의원은 “국민을 아우르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뜨는 것도 그러한 능력이 배경이 됐다”고 말했다. 민주당 박 의원은 “향후 주요 이슈가 단기간에 극복될 과제가 아닌 만큼 다수의 의견을 모으고 연대의 정신에 기초해 문제를 푸는 소통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의 핵심 참모로 ‘MB 노믹스’를 설계한 곽승준 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원장도 미래 비전 제시 능력과 함께 세대 간 갈등을 다듬고 조율할 수 있는 소통 능력을 가장 중요한 자질로 들었다.
대한민국의 ‘공존’을 위해서는 사분오열된 사회통합 능력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많았다. 강원택 교수는 “양극화 해소를 위해서는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해낼 수 있는 사회통합 역량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부족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공공성을 강조한 전문가도 있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도덕성과 공평함이 가장 중요한 자질로 거론될 것”이라고 말했고, 강장석 교수는 “나보다는 다수와 국민을 위하는 공적 헌신, 희생을 보여주는 지도자 자질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 시대정신에 맞는 대권 주자 있나
최 소장은 “현재 거론되는 주자들은 시대정신과 요구되는 자질 중 한두 가지씩 부족해 이것을 보완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경우 안정적인 리더십을 갖고 있지만 내년 상황이 요구하는 시대정신에 부응할 역량이 있는지는 대선 정국에서 검증을 받아야 한다고 최 소장은 지적했다.
진보진영의 이론가인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은 “안철수 원장은 변호사나 관료 출신 등 ‘시험’을 통해 자리를 얻은 정치인들과 달리 ‘시장’에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유능한 인물이고, 박 전 대표는 신뢰에서 우위를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내년 대선에서 기존 정치인과 다른 참신함을 갖춘 후보가 유권자에게 어필할 것이다. 안정감도 동시에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안 원장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 2012 여야 대선주자들이 고민하는 시대정신 키워드는? ▼
여야 대선주자들도 내년 대선의 시대정신을 선점하기 위해 골몰하고 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개인 행복’과 ‘사회 통합’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이제는 국가발전과 국민 행복이 같이 가야 하며, 개인의 자아실현을 강조하는 행복이 내년 대선의 중요한 화두가 될 것”이라면서 “분열되고 있는 한국사회를 통합하는 것도 중요한 시대정신”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는 ‘좋은 일자리’와 ‘복지’에 방점을 찍고 있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조성한 일용직 일자리가 아니라 경제성장을 통해 창출된 안정적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문수 경기지사는 ‘희망’을 강조한다. 경제적 박탈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치유하고 통일선진강대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국민에게 희망을 심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로 부상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출마를 결심할 경우 ‘나눔’ ‘배려’ ‘공감’ ‘헌신’ ‘상식’ 등을 시대정신으로 들고 나올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안 원장은 ‘청춘콘서트’ 등을 통해 이 같은 키워드를 내세웠으며 지난달에는 안철수연구소 보유 주식 중 절반의 사회 환원을 밝히기도 했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는 ‘보편적 복지’와 ‘경제 민주화’를 시대정신으로 규정하고 있다. 특히 보편적 복지와 관련해서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 흐름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기본적 권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민생’과 ‘복지’를 꼽고 있다. 그는 최근 인터뷰에서 “피폐해지고 무너진 서민과 중산층의 삶을 다시 복원하는 것이 시대정신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고성호 기자 sungho@donga.com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 2012 대선 시대정신 설문 응답자(22명) ::
강원택 서울대 교수(정치학) 강석훈 성신여대 교수(경제학) 강장석 국민대 교수·한국의회학회장 곽승준 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원장 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전 중앙인사위원장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김용철 부산대 교수(정치학)·반부패학회장 김현철 한나라당 부설 여의도연구소 부소장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 나성린 한나라당 의원 박선숙 민주당 의원 박순성 민주당 부설 민주정책연구원장 박원호 서울대 교수(정치학) 신율 명지대 교수(정치학) 이석연 변호사·전 법제처장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 이철희 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 이한구 한나라당 의원 이현출 국회 입법조사처 정치의회팀장·한국정당학회장 임성호 경희대 교수(정치학)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 황상민 연세대 교수(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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