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美대화 소외된 南, 정상회담으로 돌파구?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19일 03시 00분


■ ‘美 식량지원-北 우라늄 농축 중단’ 합의 파장

대북 식량지원과 북한 비핵화와 관련된 북-미 간 막후 접촉이 급진전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꽉 막힌 한반도 정세에 물꼬가 트일지 주목된다.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22일 개최될 것으로 보이는 3차 북-미 비핵화 회담은 지난주 베이징에서 열린 북-미 사전 접촉 과정을 거쳐 가시권에 들어왔다. 이 막후 접촉에서 미국은 한 달 2만 t 내외씩 총 25만∼26만 t의 식량지원(영양지원)을 북한에 제공하고 대신 북한은 대량살상무기(WMD) 개발 모라토리움 선언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 복귀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데서 접점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그동안 인도적 식량지원 문제와 정치적 성격의 비핵화 회담은 별개라는 공식입장을 밝혀 왔다. 하지만 미국은 글린 데이비스 대북정책특별대표가 7∼15일 한-일-중 순으로 동북아를 순방하는 동안에도 꾸준히 뉴욕채널을 통해 북한과 식량지원 문제를 협의해 왔다.

그리고 데이비스 대표가 중국 측과 협의하기 위해 베이징에 도착한 13일 이근 북한 외무성 미국국장도 베이징에 도착했다. 외교 당국자는 “이 국장은 데이비스 대표와 만날 일이 없으며 식량지원 문제는 로버트 킹 미국 대북인권특사가 담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고 실제 킹 특사가 15일 직접 베이징까지 날아와 이 국장과 식량지원 회담을 진행했다. 미국의 6자회담 대표와 식량문제 담당 대표가 각각 베이징에서 역할을 분담해 회담을 진행한 셈이 됐다. 그리고 데이비스 대표와 킹 특사의 아시아 출장 결과를 검토한 미국 정부가 조만간 북-미 3차 비핵화 회담을 재개하기로 입장을 정하고 발표를 목전에 두고 있는 것이다.

북-미 3차 비핵화 회담은 북핵 6자회담 재개로 가는 수순으로 평가된다. 그간 외교 당국자들은 “1, 2차 비핵화 회담을 통해 충분히 사전협의를 거쳤으며 3차는 6자회담으로 가기 위한 내용을 채우는 회담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북한의 비핵화 사전조치 이행 의지가 확인되지 않으면 3차 비핵화 회담은 열리기 어렵다는 전망이었다. 따라서 북-미 간 ‘식량지원-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중단’ 합의는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정세의 큰 변화로 평가된다.

한국 정부도 조급하게 됐다. 한국 정부는 그동안 영유아 등 취약계층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가능하다면서도 대규모 식량지원은 ‘정치적 성격’ 때문에 곤란하다며 거부해 왔다. 천안함 및 연평도 사건에 대해 북한의 아무런 사과도 받아내지 못한 상황에서 북-미 간의 대화가 급진전을 이루는 양상이기 때문이다. 당장 영양식의 형태이긴 하지만 미국이 25만 t이 넘는 대규모 식량지원을 할 경우 한국 정부도 행동에 나서라는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킹 특사가 이산가족 상봉 문제에 관여하는 점도 한국 정부로서는 부담이다. 그는 미국에 거주하는 이산가족의 상봉을 위해 미국 적십자사를 통해 북한과 다양한 접촉을 해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류우익 통일부 장관이 9월 취임 이후 이산가족 상봉과 국군포로 및 납북자 송환 등 인도적 사안에 깊은 관심을 보였음에도 북한은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미국 정부는 내년 자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북한이 돌발행동을 하지 않도록 관리하기 위한 목적으로 식량지원 카드를 꺼내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그런 맥락에서 한국 정부가 6자회담 재개의 주도권을 쥐고 한반도 주변정세를 적극 관리하기 위해 내년 총선 전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6자회담 재개 시기와 관련해 외교 당국자는 “모든 회담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북한이 자기에게 주어진 의무사항을 성실히 이행하더라도 내년 3월 말 서울에서 열릴 핵안보정상회의 이전 개최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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