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당은 곧 김정일이기에 북한에서 사용하는 ‘당자금’이란 표현은 김정일이 쓰는 돈을 의미했다. 정치에서 생명과도 같은 돈이기는 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세계 경제 순위가 150위 밖인 북한의 경제 수준으로 보면 화폐가치도 그만큼 낮다. 북한 일반근로자의 평균 임금은 내화 2000원, 최근 암시장 환율로 0.5달러다. 굳이 비교하면 휴지나 다름없다.
그러니 김정일이 쓴 돈은 당연히 외화였다. 1970년 설립된 노동당 39호실 산하 ‘대성은행’은 당자금 전담은행이다. 1년 예금액은 3억∼4억 달러, 현재 200억∼300억 달러가 있을 거라는 게 전문가들의 추측이다. 막강한 39호실은 해외 지부 20개, 무역회사 100여 개를 비롯해 금광까지 거느리고 있다. 해외 지부에서 매년 벌어들이는 2억∼3억 달러는 고스란히 김정일의 비자금으로 외국은행 비밀계좌에 분산 예치된다.
북한의 외화벌이는 다양하다. 해외에서 문화 공연, 건설 유치, 식당 진출 등 돈이 되는 일이면 뭐든 한다. 허위 투자 유치와 가짜 국제보험 판매도 외화벌이의 일종이다. 수출품은 농토산물 도자기 미술품 등이 기본이고 철광석 구리 마그네슘 등 고가 지하자원을 외국에 헐값에 팔기도 한다.
국내 무역회사들은 주민들에게 외화벌이 할당량을 준다. 많은 인민이 산과 바다를 전전하며 약초를 캐고 물고기를 잡아 당에 바친다. 그래야 식량이 나오고 생필품을 공급받을 수 있다. 외화를 많이 벌어 바치면 영웅이 되고 출세도 쉬우니 죽기 살기로 열성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전국에서 1년 내내 민관군이 피와 땀으로 벌어들인 외화는 ‘충성의 당자금’이란 이름으로 김정일에게 바친다. 특정 시기에 김정일이 간부들과 인민들에게 베푸는 돈을 ‘사랑의 당자금’이라고 부른다. 스위스를 비롯한 외국 은행에 수백억 달러를 갖고 있었던 김정일은 한 없이 돈을 썼을 것이다.
필자가 평양에 있을 때인 1992년 2월 이런 일이 있었다. 김정일의 50회 생일을 앞두고 노동당에서 “이번에 사랑의 당자금으로 평양시민들에게 김정일 장군님의 크나큰 선물이 차려진다. 우리는 장군님 가까이에서 사는 수도시민의 영광을 늘 가슴에 안고 살아야 한다”는 강연을 들었다. 그것도 몇 주 전부터 일과 후 1시간 동안 매일 회의실에 모여 강연을 듣고 감사 토론을 벌였는데 정작 선물을 받고 보니 허무한 생각이 들었다. 그때 평양시민 가족당 받은 선물은 가정용 전자벽시계와 2인용 이불 1개, 2kg짜리 돼지고기 통조림 등 세 가지인데 모두 중국산이었다. 평양시민이 역사상 받은 가장 통 큰 선물이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