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 국회, 민생법 141건 ‘2.5분에 1건꼴’ 벼락치기 통과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30일 03시 00분


국회는 29일 본회의를 열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11월 22일) 후 여야 간 대립으로 미뤄놓았던 민생법안을 무더기로 지각 처리했다.

새해를 사흘 앞두고 열린 이날 본회의에서는 이른바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일명 도가니법) 등 법률안 128건과 ‘국군부대의 국제연합 레바논 평화유지군 등 파견연장 동의안’ 2건, ‘중국어선 불법조업 재발 방지 대책 마련 촉구 결의안’ 1건, 정치개혁특별위원회 등 특위 활동시한 연장안 7건, 기타 안건 3건 등 모두 141개 안건이 처리됐다.

국회는 이날 ‘2.5분에 1건꼴’로 법안을 통과시켰다. 사회를 보던 정의화 부의장이 “○○○ 개정안에 표결하십시오”라는 말을 하기도 전에 표결 상황을 알리는 전광판에 의원들의 찬반 표시가 나타나기도 했다. 그나마도 의원들의 이탈로 의결정족수를 못 채우자 당초 처리하려던 안건 4건은 남겨둔 채 중단됐다. 이로 인해 한미 FTA 재협상 촉구 결의안은 30일 본회의에 다시 상정하기로 했다.

○ 근로장려금 지원 확대

29일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 중에는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저임금 근로자의 보호와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을 위한 ‘친서민 법안’이 대거 포함돼 있다.

정부가 영세 사업장 저임금 근로자들의 국민연금 납부액과 고용보험료의 3분의 1을 지원하도록 한 ‘고용보험 및 산업재해보상보험의 보험료 징수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보험료 부담으로 영세 사업주와 근로자들이 사회보험 가입을 기피하는 사례를 막기 위한 것이다. 당초 내년 10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나 정부는 시행 시기를 최대한 앞당길 방침이다.

‘파견근로자보호법’ 개정안 등의 통과로 비정규직과 파견근로자의 처우 등이 개선된다. 근로감독관이 불법 파견임을 확인하면 파견 기간에 관계없이 사용 사업주는 해당 근로자를 직접 고용해야 한다. 그간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4단체는 기업의 자율적인 인력 운용을 막는다며 이를 반대해왔다. 또 부당한 차별대우를 한 사업주에게는 과태료가 부과된다.

30일 본회의에서는 서민들의 생활 부담을 덜어줄 세제 개편안도 대거 상정될 예정이다. 근로장려세제(EITC) 혜택을 받는 대상 가구와 공제 혜택을 늘리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월세소득공제 대상에 홀몸노인이나 미혼자 같은 ‘나 홀로 세입자’를 넣는 ‘소득세법’ 개정안, 아파트 내 어린이집에 부가가치세를 면제해주는 ‘부가가치세법’ 개정안 등이 포함된다.

○ 방문판매법 개정

성폭력 범죄자의 사회복지시설 근무를 제한하는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도 통과됐다. 성범죄자는 10년 동안 사회복지법인에 근무할 수 없고, 특히 사회복지시설에 재직하는 동안 성범죄를 저지를 경우 평생 시설 취업이 제한된다. 성범죄가 발생한 시설에는 정부가 영업 정지나 시설 폐쇄 등의 행정조치를 할 수 있다. 또 집단적이고 반복적으로 발생했을 경우 설립 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안의 통과로 5년 동안 3회 이상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택시운전사는 20년 동안 택시자격증을 재취득할 수 없다. 방문판매로 신고하고 실제로는 다단계판매로 영업하는 이른바 ‘신방문판매’ 업체에 대한 규제 공백을 해소하기 위한 ‘방문판매법’ 개정안도 통과됐다.

○ 박희태 의장 발의 법안도 처리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한국형 복지’의 기본 철학을 담아 발의한 ‘사회보장기본법’ 전면개정안도 이날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국가가 생애 단계마다 필요한 복지 서비스를 맞춤 제공해 ‘평생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5인 이상이 모여 자유롭게 협동조합을 설립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협동조합기본법’ 개정안도 의결됐다. 이는 민주통합당 손학규 전 대표가 9년 만에 다시 의원이 된 뒤 발의한 법안과 무소속 김성식, 통합진보당 이정희 의원이 각각 발의한 법안을 절충한 것이다.

박희태 국회의장이 현직 의장으로서는 57년 만에 처음으로 발의해 관심을 모았던 한국해양과학기술원법도 이날 본회의에서 처리됐다.

○ 대형마트 오후 11시 이후 영업금지

골목상권 보호를 위해 대형마트 등의 영업시간을 규제하는 내용의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도 이날 국회 지식경제위원회를 통과했다. 개정안은 대형마트의 영업을 오후 11시부터 다음 날 오전 8시까지는 금지하고 매월 하루나 이틀은 의무휴업하도록 했다. 대형마트와 대기업슈퍼마켓(SSM)이 급증한 데다 일부 업체가 24시간 영업을 하면서 편의점과 동네 상인들에게 적잖은 타격을 주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영업시간을 제한하면 원하는 시간에 상품을 구입할 수 없게 되는 소비자도 큰 불편을 겪는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재래시장을 보호한다고 하지만 정작 대부분의 재래시장은 심야에 문을 닫는다”며 “오히려 내수 활성화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부에선 근무시간 축소가 시간제 직원 등의 고용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한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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