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 만들자’는 여권… 속내는 서바이벌 게임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월 10일 03시 00분


한나라당 이재오 의원은 요즘 친이(이명박)계 의원들로부터 “공식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재촉을 많이 받고 있다고 한다. 고승덕 의원이 폭로한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을 계기로 친이계가 부패 집단으로 매도를 당하자 “가만히 있다간 도매금으로 망한다.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이 의원은 9일 정몽준 전 대표의 출판기념회에서 “사람도, 정치인도, 당도 그렇고 어렵다 싶으면 중국 고사의 ‘지초북행(至楚北行)’이란 말처럼 마음은 초나라인데 북쪽으로 간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겉으로는 도와달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당 쇄신을 명분으로 친이계를 배제하고 있다는 것을 에둘러 비판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친이계 내부에선 19대 총선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으로 재창당론이나 신당론이 대두되고 있다. 돈봉투 파문을 당시 박희태 후보를 지지했던 친이계 전체의 문제로 몰아가는 분위기가 감지되자 특단의 조치로 돌파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검찰 수사가 2008년 비례대표 공천과 2010년 전당대회로 확대될 수도 있어 ‘당권파’였던 친이계의 초조함은 보통이 아니다.

한 친이계 의원은 “대(大)중도신당을 추진하는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의 역할이 앞으로 중요해질 것”이라며 “중도와 보수, 일부 진보세력까지 아우르는 대규모 신당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집단 탈당도 불사할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친이계 주축의 재창당 모임은 이날 회동을 갖고 12일 또는 13일에 비대위원이 참석하는 의원총회 소집을 요구하기로 했다.

재창당이란 대목에선 당내 쇄신파도 친이계와 접점을 공유하는 측면이 있다. 일부 쇄신파도 “이대로는 총선을 치를 수 없다”며 당 해체와 재창당을 주장하고 있다. 재창당론이 박근혜 비대위 출범으로 잠시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지만, 돈봉투 사건을 계기로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정두언 의원은 9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한나라당은 수명을 다했고 이제 표를 달라고 할 수가 없다”며 “그나마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재창당”이라고 말했다.

사실 이런 주장은 이명박 대통령 및 친이계와의 단절과 맥이 닿아 있다는 분석이다. 이 대통령은 당 해체 후 창당되는 신당에 입당하지 않는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탈당이 가능하고, 친이계도 자진 탈당하면 당 쇄신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재창당’을 두고 친이계와 쇄신파가 동상이몽(同床異夢)을 하고 있는 셈이다.

정몽준 전 대표도 이재오 의원 및 홍준표 전 대표, 김문수 경기지사 등과 ‘비박(非朴) 연대’를 모색하며 친박 책임론과 전당대회 개최를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한나라당 간판으로는 총선을 치르기 어렵다는 판단 아래 재창당 또는 신당에 공감대를 갖고 있다. 정 전 대표는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당이 지리멸렬하게 된 책임은 친이·친박의 고질적 계파 갈등에 있다”며 “그 원인을 제공한 분들이 계파의 수장들 아니냐”고 박근혜 비대위원장을 겨냥했다.

고성호 기자 sungh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