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외교안보 라인의 한 고위당국자는 16일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계속된 중국의 ‘북한 감싸기’를 이렇게 진단했다. 이 당국자는 “중국의 동북아시아 대외전략에 대한 우리의 단견(短見)을 보여준 사례”라며 “지금부터라도 한중관계와 국제정치의 냉엄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자 ‘전략적 협력동반자’인 중국이 적극 북한을 두둔하자 한중관계가 경제 일변도로 흘러오면서 외교안보적 측면을 간과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당시 한국은 중국의 태도에 큰 충격을 받았지만 중국으로서는 철저히 국익을 추구한 행동이었다.
미국과 동북아 패권을 다투는 중국은 한미 양국이 공조 수위를 높여 ‘혈맹’인 북한을 협공하는 상황을 그냥 두고볼 수 없었다. 이 때문에 북한을 지원하고 북-중 동맹을 강화하는 게 ‘국가적 핵심이익’이라고 판단했다.
결국 중국은 한미동맹 강화가 한반도와 동북아의 ‘세력균형의 추’를 흔드는 행위로 보고 대응한 것이어서 이를 한중관계의 틀로만 보면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서진영 고려대 명예교수는 “결과적으로 천안함, 연평도 사건은 한국의 대북 강경책뿐 아니라 한중관계와 미중관계에 큰 타격을 주고, 느슨해졌던 북-중 관계를 복원시키는 효과를 거뒀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한반도를 둘러싸고 ‘한미 대(對) 북-중’ 대결을 축으로 한 G2 대립이 격화됐고, 신냉전 기류가 조성됐다. 연평도 도발 직후인 2010년 12월 미국이 중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핵추진항모 조지워싱턴을 서해로 진입시키자 미중 갈등은 정점으로 치닫는 듯했다.
하지만 북한은 혈맹인 중국의 의리를 확인하는 기대 이상의 수확을 얻었다. 최명해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북한은 이미 오래전부터 ‘계산된 모험주의’로 북-중 동맹을 강화하거나 복원해 왔다”고 강조했다.
1960년대 중국-소련 간 분쟁의 틈바구니에서 북한은 의도적으로 중국의 외적 위협과 안보 우려를 자극해 자국의 지정학적 가치를 높이는 수법으로 북-중 관계를 복원했다. 북한이 1960년대 후반 대규모 대남 무장게릴라를 잇달아 침투시키고, 1968년 푸에블로호 납치사건과 EC-121기 격추사건을 저지른 이유도 남조선 적화나 대미 항전이 아닌, 중국을 염두에 둔 ‘계산된 모험주의’라고 최 연구원은 분석했다.
그는 “북한은 미국과의 대결이나 한반도 불안정성을 촉발시켜 ‘중국도 큰 곤경에 빠질 수 있으니 우리를 내팽개칠 생각은 하지 마라’는 메시지를 중국에 계속 전달해 왔다”며 “이런 점에서 북-중 동맹은 ‘겉은 뜨겁지만 속은 싸늘한’ 이중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주장대로라면 북한은 G2의 패권경쟁이 가열될수록 그 틈바구니에서 생존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모험주의’를 답습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반면 G2 간 협조체제가 가동될 경우 북한의 입지는 줄어든다. 1980년대 북한이 아웅산 폭탄테러와 KAL기 폭파사건 등 돌출 행위를 감행했지만 미국과 공조체제에 있던 중국은 북한의 의도에 말려들지 않았다.
북한은 취약한 김정은 체제 탓에 내부 위기 극복을 위한 타개책으로 도발을 선택할 수도 있다. 전쟁의 전환이론과 희생양 이론에 따르면 외부와의 분쟁이 발생하면 내부 결속이 높아지고, 사회적 불만을 잠재울 수 있다.
외교관 출신 탈북자인 현성일 국가전략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은 “1차 북핵 위기는 동구권 붕괴와 한중 수교로 훼손된 대내적 통합 회복에, 2차 북핵 위기는 극심한 경제위기와 식량난으로 인한 대내적 위기 해소에 기여했다”고 진단했다. 김태우 통일연구원장은 “김정은 체제는 내부 결속을 위해 필요하다면 핵실험 같은 도발을 감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중국이 한반도의 현상유지를 위해 북한에 여러 차례 모험 자제를 요청한 만큼 북한도 더는 중국을 곤란하게 만드는 무모한 행동을 자제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백승주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은 “김정은 후계체제가 내부문제 해결을 위해 ‘저강도 도발’을 할 가능성은 있지만 올해 대통령선거가 예정된 한국의 보수층을 결집시킬 고강도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반도 주변국의 권력교체가 일제히 이뤄지는 올해가 동북아 정세를 가름할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권력교체기엔 감정적 민족주의와 강경론이 힘을 얻고, 이 과정에서 국가 간 갈등이 고조될 경우 동북아 정세는 격랑 속으로 빠져들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 당국자는 “동북아 정세에 닥칠 험한 파고를 헤쳐가려면 한미동맹과 한중 전략적 협력관계 사이에서 절묘한 조화를 찾는 외교안보 전략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앉아 있어도 죽고, 건너가다 붙잡혀도 죽을 바에는 차라리 뭐라도 해보고 죽는 게 낫다.”
대북 지원단체 ‘좋은벗들’은 최근 중국 지린(吉林) 성 투먼(圖們) 국경경비대에 붙잡힌 북한 주민들의 하소연을 이렇게 전했다. 중국 경비대 간부는 “근래 북측 경비가 살벌해졌는데도 자꾸 넘어오는 걸 보면 죽을 각오로 넘어오는 게 실감난다”고 말했다.
삼엄해진 단속과 강화된 처벌, 심지어 총격의 위험을 무릅쓰고 탈북과 도강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한 소식통은 “탈북자도 있겠지만 중국에서 생필품을 구해 되돌아가는 단순 월경자도 상당수”라고 말했다. 북한 경제가 중국에 의존해 연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경제의 중국 의존도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북한의 무역총액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율은 2010년 83%까지 치솟았다. 지난해 1∼10월 북-중 교역은 46억6540만 달러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73.6%나 늘었다. 특히 수입은 전년보다 125%나 증가했다. 매년 30만∼100만 t으로 추정되는 석유 수입은 전량 중국에 의존하고, 식량도 매년 20만 t가량을 지원받고 있다. 김정일 사망 직후 중국이 40만 t의 식량을 추가로 지원한다는 보도도 있다.
하지만 중국의 대북 지원은 북한이 쓰러지지 않을 정도에서 이뤄지고 있다. 오히려 과도한 부담을 떠안아 북한 문제에 휩쓸려 들어가진 않겠다는 신호들이 곳곳에서 탐지된다. 황금평 개발이 대표적이다. 북한의 최고 실세인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이 직접 챙기는 황금평 개발은 지난해 6월 착공식을 했지만 7개월이 지나도록 첫 삽도 뜨지 못했다.
조봉현 기업은행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단둥(丹東)에도 빈 공장이 많은데, 언제 조성될지 모를 황금평 공단에 선뜻 나설 중국인 투자자가 없다”며 “중국 정부가 수익을 보증도 하지 않는 상태에서 위험을 떠안기 싫다는 인식이 중국 기업인들 사이에 많다”고 전했다. 나진-선봉도 마찬가지다. 물류비 감축 차원에서 나진항을 이용하려는 중국인은 많지만 산업단지에 투자하는 이들은 거의 없는 형편이다.
북한 지도부도 중국에의 의존이 ‘양날의 칼’임을 알고 있다. 남북교역과 외부지원이 끊겨 유일하게 기댈 곳이 중국이지만 중국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중국은 2003년 북한을 6자회담으로 끌어내기 위해 송유관을 잠그는 등 경제지원을 압박수단으로 사용한 바 있다.
중국과 교역이 늘면서 북한 사회의 분위기가 이완되는 부작용도 있다. 김정일 사망 후 북한이 주민의 중국 왕래를 사실상 차단하고 위안화를 비롯한 외화 사용을 금지한 것도 이 때문이다.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은 2일 새해 첫 지시로 “달러와 위안화 등 일체의 외화 사용을 중단하며, 적발되면 마약 유통범에 준해 처벌한다”는 포고를 하달했다.
다만 이런 통제가 계속되면 쌀값을 비롯한 물가 폭등을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북한 쌀값은 최근 한 달 사이 kg당 3500원에서 5000원으로 급등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