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사실 유포 가중처벌… “나경원法이 필요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2월 1일 03시 00분


‘나경원 1억 피부숍’ 거짓 드러났지만 처벌 힘들어
총선-대선 앞두고 ‘SNS 흑색선전’ 대비책 세워야

‘1억 피부숍’ 나경원에 치명타 지난해 10월 26일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패배한 나경원 당시 서울시장 후보. 나 후보는 선거를 일주일여 앞두고 터진 ‘1억 원 피부숍 이용설’로 지지도가 급락했다. 그러나 최근 경찰 조사 결과 이는 사실이 아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1억 피부숍’ 나경원에 치명타 지난해 10월 26일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패배한 나경원 당시 서울시장 후보. 나 후보는 선거를 일주일여 앞두고 터진 ‘1억 원 피부숍 이용설’로 지지도가 급락했다. 그러나 최근 경찰 조사 결과 이는 사실이 아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선거판을 흔들기 위해 악의적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하면 가중 처벌하는, 일명 ‘나경원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나라당 나경원 서울시장 후보는 지난해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선거를 1주일여 앞두고 터진 ‘1억 원 피부숍 이용설’로 큰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당시 이를 보도하거나 유포한 당사자들에 대한 강도 높은 처벌은 힘든 상황이다.

문제는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을 앞두고 벌어질 후보들 간 ‘학습 효과’다. 이번 총선에서는 여야 모두 국민참여경선을 확대하기로 약속한 만큼 사실상 지역 여론이 공천에서의 당락을 결정하게 된다. 짧은 시간 안에 여론을 뒤흔들 수 있는 네거티브 선거전의 유혹이 어느 때보다 크다는 얘기다.

더욱이 올해 총선과 대선에서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의 여론이 선거 전체의 풍향을 좌우할 가능성이 크다. 만약 엄청난 속도의 파급력을 지닌 SNS가 비방과 흑색선전의 도구로 활용된다면 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제도 자체가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 그럼에도 민주통합당에서는 거꾸로 허위사실공표죄의 처벌을 어렵게 하는, 일명 ‘정봉주법’을 당론으로 추진하고 있어 ‘혼탁 선거’의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

31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총선을 70여 일 앞둔 현재 상대 후보에 대한 비방이나 흑색선전으로 선관위에 적발된 것은 모두 5건이다. 18대 총선 당시에는 선거일을 70여 일 앞두고 비방이나 흑색선전으로 적발된 사례가 없다. 그만큼 이번 선거에서 후보들 간 경쟁이 치열하다는 의미다. 양당에서 국민참여경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네거티브 선거전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으로 보인다.
▼ 선거판 휘젓는 ‘꼼수’ 처벌 흐지부지… ‘본때’ 보여야 사라진다 ▼

문제는 후보자나 후보 캠프에서 비방이나 흑색선전을 주도했다가 적발돼 처벌받으면 선거에서 이기더라도 재선거를 치를 수 있지만 ‘1억 원 피부숍 사건’처럼 제3자가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면 민의가 왜곡돼도 바로잡을 기회가 없다는 점이다. 나 후보의 ‘1억 원 피부숍’ 논란은 시사주간지인 ‘시사IN’이 처음 보도한 뒤 인터넷 팟캐스트인 ‘나꼼수’와 SNS를 통해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갔다.

박원순 서울시장 캠프에서 대변인을 맡았던 우상호 전 의원은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나는 피부숍이 1억 원이라고 규정한 적이 없다”며 “주간지 기사를 보고 ‘실체를 밝히라’고 촉구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특정 언론이나 제3자가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후보 캠프에서 이를 확대재생산하는 현재의 네거티브 선거전의 확산 과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특히 총선이나 지방선거와 달리 대선의 경우엔 특정 후보 측에서 근거 없는 흑색선전을 펼쳐 당락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더라도 사실상 선거 결과를 무효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당선자와의 관련성을 입증하기도 어렵고 재선거를 치르기엔 사회적 비용과 혼란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실제 2002년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둘러싸고 ‘아들 정연 씨가 불법으로 병역을 면제받았다’, ‘부인 한인옥 씨가 기양건설에서 10억 원을 받았다’, ‘이 후보가 최규선 씨로부터 20만 달러를 받았다’는 주장이 제기됐으나 선거가 끝난 뒤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이 후보(46.6%)와 노무현 당선자(48.9%)의 득표율은 박빙이었다. ‘거짓말이 역사를 바꿨다’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 자유에 걸맞은 책임 필요


한나라당 관계자는 “최근 허위사실 유포의 주된 통로는 SNS인데, SNS를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순간 엄청난 반발에 부닥친다”고 말했다. SNS가 허위사실 유포의 성역이 되고 있다는 한탄이다.

전문가들은 결국 허위사실 유포에 대해 사후라도 엄격하게 처벌하는 정공법밖에 방법이 없다고 강조한다. 김형준 명지대 교양학부 교수(정치학)는 “허위사실 유포죄의 경우 선거가 끝나면 흐지부지 처리돼 온 것이 관행”이라며 “SNS 규제를 대폭 푸는 만큼 사용자들의 책임도 더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법원에서 양형기준을 엄격하게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아직까지 선거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을 마련하지 않은 상태다. 올해 안에 선거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을 마련할 방침이지만 총선을 코앞에 두고 있어 시기적으로 너무 늦은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허위사실 유포를 사전에 막기 위해서는 엄격한 양형기준을 통해 사법부가 단호한 처벌 의지를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후보에 대한 인신공격성 주장에 대해서는 선관위가 진위를 살펴 곧바로 경고 등을 내리는 ‘신속 구제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대부분의 허위사실이 선거 이후 확인되기 때문이다. 재선거가 불가능한 대선에서는 더욱 필요한 제도다.

일각에서는 손해액만큼 보상하는 보상적 손해배상제도와 달리 실제 손해액보다 더 많은 배상을 물리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선거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반사회적 범죄로 규정해 엄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 현재 정치권 움직임은


국회 정치개혁특위에서는 여야가 그나마 비방이나 흑색선전에 대해 제재를 강화하기로 합의를 마쳤다. 이 방안에 따르면 후보가 직접 인터넷상에서 문제가 있는 게시물을 선관위에 신고할 수 있다. 선관위는 관리자나 운영자에게 삭제를 요청한 뒤 이에 불응하면 1차로 300만 원의 과태료를 물리고 2차로 형사고발을 하게 된다. 또 후보자 비방죄의 법정형을 현재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상향 조정키로 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신중론을 주문하기도 한다. 윤성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규제일변도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올바른 온라인 토론과 소통을 통해 바람직한 사이버상의 토론문화를 정착하는 것이 본질적인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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