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이 무엇인지를 캐묻지 말고 밖으로 드러난 것만 갖고 이해해주기 바랍니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 같습니다. 3년 동안 충분히 할 일을 했습니다. 지금 (주미대사를) 바꿔도 괜찮을 때지요.”
16일 밤 12시(현지 시간) 무렵 뉴욕을 거쳐 워싱턴 주미대사관 관저로 돌아온 한덕수 대사의 목소리는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내일 일찍 일어나 미 국무부에 전화해 (이임 사실을) 알리고 직원들에게도 이임 인사를 해야 한다”며 “사표를 냈으니 수리되는 대로 빨리 워싱턴을 떠날 것”이라고 말했다. 11일 공관장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로 떠날 때 보여준 여유로운 웃음은 20여 분간의 통화에서 한 번도 들을 수 없었다.
한 대사의 돌연한 사임을 놓고 워싱턴 외교가에선 논란이 분분하다. 사의 표명 과정에 “이레귤러(비규칙적인)한 것은 없었다”는 한 대사의 해명(16일 뉴욕 공항에서 특파원들과 만나)에도 풀리지 않는 의혹이 많다.
우선 공관장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워싱턴을 떠날 때만 해도 사임은 생각지도 않았던 한 대사가 이명박 대통령과의 면담 후 사표를 냈다는 사실 자체가 이번 인사가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못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설령 일부 청와대 관계자의 설명처럼 이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파와의 싸움’을 위해 무역협회장으로 보내려는 포석을 갖고 있었다 해도 한 대사는 ‘중요한 직책으로의 전진배치’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주미대사직에 더 두기 싫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여 자진해서 사의를 표명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경질이든 전진배치든 주미대사라는 자리의 교체가 이렇게 껄끄럽게 진행된 것은 너무도 서툴고 부자연스러운 인사 처리라는 비판이다.
또 정권 임기가 1년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주미대사를 갑작스럽게 교체하는 인사는 외교 관례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워싱턴 외교가에선 “새 주미대사가 부임하려면 아그레망(주재국 임명 동의)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부임해 공식 활동을 하려면 아무리 빨라도 2개월은 걸린다”며 “현 정부 임기가 10개월도 안 남은 상태에서 부임할 새 대사가 어떤 일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겠느냐”는 얘기가 많다.
한 외교소식통은 “미국 측이 한정된 임기의 새 주미대사와 정보를 제대로 공유하려고 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FTA 미 의회 비준에 적극 관여한 한 미국 측 인사는 “미 행정부는 한 대사의 갑작스러운 사표 제출에 놀라워하는 상황”이라며 “외교관례에 걸맞지 않은 갑작스러운 인사인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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