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23일 한국무역협회장으로 자리를 옮긴 한덕수 전 주미대사의 후임으로 최영진 전 주유엔 대사(64·사진)를 내정했다. 최 내정자는 미국 정부의 동의 절차를 밟아 다음 달 중순 이후 워싱턴으로 부임한다.
최 내정자 발표 직후 정부 안팎에선 ‘의외의 인사’라는 평가가 나왔다. 청와대 관계자도 이날 “현 정부에선 고위직 후보로 일절 검토되지 않았던 인물”이라고 말했다. 최 내정자는 ‘노무현 정부 사람’의 이미지가 강한 인물이다.
최 내정자는 외교안보연구원장이던 2003년 장차관 워크숍에서 ‘주류 언론과의 전쟁’을 치르던 청와대와 코드를 맞추면서 구설에 오른 적이 있다. 당시 “기자들의 사무실 출입이나 기자 접촉 및 접대는 없어져야 한다”며 “언론이 지엽적인 것만 보는 바람에 성과가 컸던 노 대통령의 워싱턴 정상회담을 좋게 쓴 곳이 없다”고 말했다.
최 내정자는 2007년 말 정부를 떠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코트디부아르 담당 특별대표로 기용돼 4년간 주로 코트디부아르 수도 아비장에 머물렀다. 코트디부아르에서 활동할 때도 한국 언론의 취재에 잘 응하지 않아 논란이 됐다.
청와대는 최 내정자 인선에 대해 인재풀을 폭넓게 활용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한 고위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전날 기자회견 때 ‘인사 방식을 두고 오해가 있다면 앞으론 시정하겠다’고 밝힌 것처럼 역량이 있고 생각이 맞는다면 누구라도 기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 내정자는 노무현 정부에서 임명됐던 이태식 전 대사, 국무총리를 지낸 한 전 대사에 이어 전 정부와 인연이 깊은 현 정부의 세 번째 주미대사가 됐다.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외시 10회)의 4년 선배인 그는 직업 외교관으로선 현직에서 일하는 최고참이 됐다.
인선 과정에서 최 내정자는 1순위가 아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위 당국자들은 “1차로 낙점된 다른 인물이 있었으나 그가 고사한 탓인지 결국 인선이 바뀌었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그동안의 ‘돌려 막기 인사’가 한계에 부닥치자 의외의 인물을 기용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최 내정자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맺은 끈끈한 인연 때문에 ‘반기문 천거설’도 나왔지만 청와대 측은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최 내정자는 외교가에서 “다자외교 경험과 협상력, 문화적 소양을 두루 갖춘 실력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외교부 국제경제국장과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사무차장, 유엔 평화유지활동국(DPKO) 사무차장보, 주오스트리아 대사 등 다양한 자리를 거쳤다. 영어와 프랑스어에 능통한 것은 물론이고 ‘서양 정신의 위기’ ‘동양과 서양’ 등 여러 권의 저서를 냈다.
하지만 화려한 경력과 주위의 좋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공직생활 동안 몇 차례 고비를 맞기도 했다. 국제경제국장 시절이던 1994년에는 동해 환경오염방지 국제회의에서 일본 정부에 동해 표기를 할 때 ‘일본해’도 병기하도록 양해한 것으로 알려져 징계(경고)를 받았다.
2001년 외교정책실장 시절엔 러시아와 “탄도탄요격미사일(ABM) 제한 협정을 강화하자”고 합의하는 협상에 관여했다가 곤욕을 치른 적도 있다. 당시 미국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미사일방어(MD) 계획을 위해 ABM 협정 폐기를 추진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사실상 러시아 측을 옹호한 것이어서 미국 측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서울 출신으로 대광고를 졸업한 최 내정자는 연세대 의대를 다니던 1970년대 초 스웨덴인 친구로부터 “우리나라는 이미 발전해 내가 기여할 게 없지만 너는 한국을 위해 기여할 게 많다”는 말을 들은 뒤 정치외교학과로 편입해 외교관의 길을 걷게 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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