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탈북 김옥화 씨 “북송위기 탈북자 31명 속에, 18년만에 만난 엄마가…”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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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끊는 사모곡’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 김옥화(가명) 씨가 23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70세가 넘은 김 씨의 노모는 딸을 찾아 북한을 탈출해 한국으로 오던 중 중국에서 체포돼 북송 위기에 처해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 김옥화(가명) 씨가 23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70세가 넘은 김 씨의 노모는 딸을 찾아 북한을 탈출해 한국으로 오던 중 중국에서 체포돼 북송 위기에 처해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18년 전(1994년) 탈북해 한국에 정착한 김옥화(가명·45) 씨가 23일 기자를 찾아왔다. 70세 넘은 그의 노모는 한국으로 오다 최근 중국 공안에 체포된 31명 중 한 명이다.

“2월 초 중국에서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더라고요. 어머니가 중국으로 몰래 건너왔다고. 어떻게 딸을 찾았는지 제게 연락을 하신 거예요.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1994년 탈북한 이후 어머니를 만난 적이 없어요. 아니, 소식도 모르고 살았죠. 그런데 어머니가 70세가 넘은 고령으로 한국에 사는 딸을 찾은 거예요. 전화기를 부둥켜 쥐고 소리쳤어요. ‘엄마, 내가 곧 갈 테니 며칠만 기다려줘.’

태어나서 외할머니를 한 번도 보지 못한 둘째 아이와 사흘 뒤 어머니가 있는 중국으로 갔어요. 그리고 어머니를 만났습니다. 무려 18년 만에 만난 겁니다. 밤새 부둥켜안고 울었죠. 제 기억 속엔 젊은 모습이었던 어머니는 왜 그리도 늙으셨는지. 얼굴에 주름뿐이었어요.

아버지 안부부터 물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북한에서 생활난을 못 이겨 탈북한 직후 굶어 돌아가셨대요. 아니, 자식을 굶기는 당신 처지를 자책하며 식음을 끊고 스스로 돌아가신 거라고 해요. 제 막내 남동생은 장마당에서 맞아 죽었답니다. 배고파서 장마당에서 음식을 훔쳐 먹다 발길질에 차여 가슴에서 피를 토하고 그만…. 남동생이 하나 더 있었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직장에서 그 애라도 책임져 주겠다고 데려갔대요. 쌀이 없으니 이 애라도 직장에서 먹여 살려보겠다고 기숙사에 넣은 거죠. 그러고는 좀 있다 군에 보내더래요. 자식들도 없이 홀로 남은 어머니는 먹을 것을 구걸하며 이리저리 떠돌다가 다행히 어느 산골에서 일자리를 얻어 지금까지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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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엄마와 이틀 밤을 보냈어요. 그리고 엄마를 한국행 탈북자 일행에 합류시켜 주고 저는 서울로 왔습니다. 귀국 비행기에서 정말 가슴이 부풀었어요. 이제 효도를 할 수 있어 정말 다행이라고. 어떻게 여생을 행복하게 해드릴까 그런 상상만 했죠. 하지만 몰랐습니다. 그 기쁨과 설렘이 불과 하루 만에 깨질 줄은. 한국에 도착한 다음 날 엄마가 한국으로 오려다 선양(瀋陽)에서 공안에 체포됐다는 날벼락 같은 전화를 받은 겁니다.

이제 어쩝니까. 엄마가 중국에 들어온 직후 탈북 브로커가 전화로 ‘곧 한국에 들여보내 주겠다’고 했지만 제3국을 돌아 한국에 오려면 몇 달이 걸릴 텐데 그전에 얼굴이라도 보고 싶어서 직접 날아갔던 겁니다. 엄마가 그때 나를 안 기다리고 바로 떠나기만 했어도 체포되지 않았을 텐데. 중국에서 만났을 때 엄마가 제게 좀 더 있다 가면 안 되냐고 묻더군요. 너무 오래 한국을 비우면 그나마 어렵게 취직한 식당에서 잘릴까 걱정이 된 저는 ‘몇 달 뒤면 다시 만날 거야’라고 겨우 달래며 헤어졌어요. 그때 제가 며칠만 더 있었더라도 엄마는 체포되지 않았을 것을. 결국 제가 엄마를 죽게 만든 겁니다. 평생 이 죄책감을 어떻게 짊어지고 가야 하나요.

우린 중국에 잘못한 거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왜 중국은 이런 고통을 줍니까. 제발 어머니를 저희 품에 돌려보내 주세요. 평생 효도라고는 받지 못한 어머니, 딸자식에게서 밥 한 끼 얻어 드시지 못하고 돌아가셔야 하나요. 저는 지금껏 식당에도 못 나가고 집에 틀어박혀 울기만 합니다. 집 안이 감옥같이 느껴집니다. 애들(형제 둘)이 외할머니가 온다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몰라요. 그 애들이 크면 민족의 이 비극이 끝날까요? 기자님?”

김 씨가 눈물을 흘리며 물었다. 기자는 대답해줄 수가 없었다. 어느새 그녀와 함께 울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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