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효자동 주한 중국대사관 맞은편에 있는 옥인교회 앞. 인적이 드문 야심한 시간에 중년의 신사가 요즘 들어 매일 조용히 이곳을 찾아온다. 이 남성은 교회 앞에 설치된 작은 텐트에 들어가 이야기를 나눈다. 텐트 근처에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먼발치에서 바라만 보다 그냥 발길을 돌리기도 한다.
이 텐트에서 중국 내 탈북자들의 강제 북송에 항의하는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56)이 21일부터 일주일 넘게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그를 매일 밤마다 찾아오는 사람은 다름 아닌 박 의원의 남편 민일영 대법관(57)이다.
박 의원은 28일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남편이 찾아와서는 별로 말을 하지 않는다. ‘괜찮으냐’고 묻고는 가만히 앉아서 나를 살피다가 돌아가고는 한다”고 말했다. 결혼 29년째를 맞은 두 사람은 긴 말을 주고받지 않아도 이심전심으로 서로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얘기로 들렸다.
단식농성을 시작한 당일 아침에도 박 의원은 민 대법관은 물론이고 가족에게 이 문제를 일절 이야기하지 않았다. 21일 오전 단식에 들어갈 때도 아들이 벗어놓은 후드점퍼를 들고 나오면서 “세탁해 주겠다”고 한 뒤 들고 나왔다. 단식을 위한 텐트를 치면서야 문자메시지로 가족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고 한다. “미리 말하면 반대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자그맣고 마른 체격의 박 의원이 평소 바쁘게 의정활동을 펼치는 것을 보면서 민 대법관은 평소에도 건강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런 아내의 무기한 단식농성에 애가 탔지만 대법관 자리에 있는 남편으로선 정치인 아내를 찾는 것조차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박 의원은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다. 이날은 큰아들(26)의 대학 졸업식이었지만 참석하지 못했다. 그는 “의원 생활을 하는 동안 가족을 못 챙기다 이번에는 꼭 가겠다고 아들과 약속했는데, 결국 못 지켰다”고 말했다.
매일 같이 찾아오는 대학 3년생 작은아들은 “여기서 잘 거냐. 집에 가자”고 화를 내기도 하지만 큰아들은 “따뜻한 물을 많이 드시라”고 한다.
일주일 넘는 단식 탓에 박 의원의 건강에는 이미 적신호가 들어왔다. 그는 “방풍이 안 되는 천막에 있다 보니 밤에 황소바람이 들어온다. 얼굴이 시려 후드점퍼 모자를 뒤집어쓰고 얼굴을 파묻고 잔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 의원은 “중국이 변하지 않는다면 끝까지 가보겠다”고 결의를 다졌다. 이어 “탈북자들이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공정한 기관을 통해 난민 심사를 받도록 하는 등 중국 정부가 최소한의 변화를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의원은 국회에 대한 실망도 감추지 않았다. 그는 “18대 국회 4년 내내 탈북자들의 인권 문제를 제기하며 너무 외로웠다”면서 “생명권이 달린 문제를 외면하는 국회가 무슨 염치로 표를 달라고 하느냐. 국회는 죽었다”고 말했다.
국회가 탈북자 북송 방지 촉구 결의안 통과에 자위하며 팔짱만 낀 채 탈북자 북송 문제를 방조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정치권 안팎에서 나온다. 하지만 4·11총선을 앞두고 의원들은 지역구 챙기기에만 급급하다. 국회 소관 위원회인 외교통상통일위원회(외통위) 위원 가운데 박 의원의 농성장을 찾아 매일 열리는 항의 시위에 동참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새누리당 초선인 권택기 신지호 차명진 조전혁 박준선 김용태 의원은 3월 1일부터 돌아가며 박 의원의 농성장에서 시위에 동참하기로 했다. 이에 앞서 황우여 원내대표와 신지호 전여옥 김을동 의원이 농성장을 찾았다. 자유선진당 의원들은 매일 박 의원을 찾아 격려한다.
한편 외교통상부 조병제 대변인은 28일 브리핑에서 “박 의원이 20일 중국 비자를 신청했다가 비자 발급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전달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상당히 유감스럽다”고 논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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