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정말 심한 우울증에 걸린 것 같아요. 평소 활발한 성격인데 얼마 전 전화를 걸어와 ‘차라리 그냥 여기서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더군요….”
8일 저녁 서울 송파구 신천동 납북자가족모임대표 사무실에서 만난 탈북자 백영숙 씨는 3년 넘게 중국 베이징 주재 한국총영사관에 ‘억류 중인’ 동생 백영옥 씨(47)의 근황을 전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백 씨 자매는 1997년 북한에서 사망한 국군포로 백종규 씨의 딸들. 영숙 씨는 “시신이라도 고향에 묻어 달라”는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세 차례 탈북과 두 차례 강제 북송을 거듭한 끝에 2004년 탈북에 성공해 유골을 안고 입국했다. 그 덕분에 아버지 백종규 씨는 ‘국군 포로 유해 송환 1호’의 주인공이 됐다.
동생 영옥 씨도 언니를 따라 2009년 아들(당시 18세)과 딸(14세)을 데리고 중국에 나와 베이징 총영사관에 들어왔지만 중국이 한국행 비자를 내주지 않아 ‘감옥 아닌 감옥살이’를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중국 현지에 억류돼 있던 탈북자 31명의 전원 북송 소식이 전해지자 영숙 씨는 동생이 영영 자유를 찾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에 신음했다.
영옥 씨는 최근 통화에서 “눈이 오고 나무에 싹이 나고, 다시 또 눈이 오고 싹이 나는데 정말 살길이 막막하다”며 자신의 신세를 비관했다. 영숙 씨는 “그런 동생이 무너질까 겁이나 ‘그럼 아이들은 어떻게 하느냐, 정신 차리라’고 질책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영숙 씨는 “사춘기를 맞은 조카들이 가끔 답답함을 호소하지만 오히려 나에게 ‘미안해하지 마라’고 위로해 줄 때도 있다”며 “올해 21세가 된 큰조카는 영어 공부에 열심이고 한국의 대학에 가는 것이 꿈”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억류 기간이 길어질수록 동생과 조카들의 정신 건강이 악화될 것이 걱정이다. 권준수 서울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외출이 금지된 채 공관에 오래 머물고 있는 탈북자들은 일종의 감각 탈실(sensory deprivation)증을 앓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영숙 씨는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미국 방문을 마치고 10일 귀국하면 면담을 신청해 답답한 심경을 토로하고 주한 중국대사관 앞에서 후진타오 국가주석에게 보내는 호소문을 낭독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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