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키신저 前 美국무장관 “北, 통신기술 유입돼 정보 퍼지면 ‘봄’ 올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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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14일 03시 00분


“南, 中과 외교 마찰땐 美와 협의해 풀어야”
‘핵안보회의 현인그룹’ 헨리 키신저 前 美국무장관 방한 인터뷰

“내 나이 곧 89세… 야망 없지만 지식 나누고파”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13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가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국제외교 무대를 통해 얻은 지식을 나누면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는 ‘지식 기부’ 의사를 나타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내 나이 곧 89세… 야망 없지만 지식 나누고파”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13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가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국제외교 무대를 통해 얻은 지식을 나누면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는 ‘지식 기부’ 의사를 나타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부 장관(88)은 13일 “현대의 통신기술이 조만간 북한에도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러면 북한 주민들도 서로 의견을 교환하게 되고 북한의 정치(권력)도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26, 27일 열리는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와 관련해 이명박 대통령이 초청한 현인그룹(자문단) 자격으로 방한한 키신저 전 장관은 이날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현대 통신기술은 모든 국가에 엄청나게 거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북한과 이란의 핵개발 야욕이 국제체제의 핵 비확산 질서를 무력화시킬 것으로 보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만들어진 국제질서가 위기에 놓인 데에는 많은 이유가 있다. 국제체제는 현존하는 국가들의 주권을 바탕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비정부기구(NGO)가 많이 등장해 복잡해졌다. 일부는 테러와 연계돼 있고, 일부는 하이테크 기술 덕분에 국경을 넘어서는 초국가적인 문제가 됐다. 핵 비확산 문제는 과거 재래식 기술로는 달성하기 불가능했던 위협이다. 이런 문제들은 국제적인 해법을 필요로 한다. 이달 말 서울에서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는 그런 노력이 가져온 결과의 하나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기술의 발전은 ‘아랍의 봄’처럼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사람들을 연결해 주는 기술의 힘이 중국이나 북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나.

“현대 통신기술은 민주국가처럼 자유롭지도 않고 개발이 뒤처진 나라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런 통신과학 기술이 북한에 들어가면 북한 주민들도 주변국과 세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것이고 자신들과 비교할 것이다.”

―2차 핵안보정상회의에서 기대하는 것은….

“과거엔 전쟁이 발발하면 대의(Cause)와 실익의 관계를 따졌다. 이런 관계는 핵기술의 발달로 붕괴됐다. 핵무기 개발과 핵테러 방지는 인류의 큰 과제가 됐다. 기술은 점점 복잡해지고 파괴력은 너무 크다. 이번 정상회의는 그런 점에서 인류의 의식을 깨우치는 기회이다.”

키신저 전 장관은 이날 인터뷰에서 한국에 찬사를 보냈다. 1951년 서울에 왔다는 그는 당시 가장 큰 건물은 일본이 세운 것이고 도시는 온통 황폐화돼 있었다고 기억했다. 그 시점에 만약 누군가가 ‘한국이 50여 개국 정상이 모이는 국제회의를 개최할 것’이라고 얘기했다면 ‘성취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1차 핵안보정상회의 이후 동일본 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하면서 핵안전과 핵안보가 더욱 긴밀히 연결된 과제가 됐다.

“핵안보에선 모든 핵물질에 대한 안전한 관리가 중요하다. 핵안전은 주요 국가들의 원자력발전소와 관련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핵무기가 확산되는 것을 어떻게 막느냐는 문제이다. 다행히 우리는 몇 가지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

―패권주의적 ‘팽창적 국가(acquisitive power)’로 변신하는 중국, 기축통화로서의 달러화 약세, 비확산 질서에 대한 도전 등으로 국제질서가 도전받고 있다.

“테러, 핵 비확산, 환경과 에너지 등의 국제체제의 위기는 세계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주제이지만 보편적인 해결책을 찾는 게 쉽지 않다. 중국의 부상이라는 현상은 국가의 성장과도 관련이 있다. 나는 중국의 부상(rise)보다는 재출현(reemergence)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는 국제체제의 하나의 문제이고 도전이 될 것이다.”

―중국의 재출현이라고 봐야 하는 이유는….

“중국은 오랜 기간 아시아에서 최고로 강력한 파워를 가진 국가였다. 중국의 관점에서 재부상이라는 것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과거 지위로 돌아가려는 것이다. 중국이 너무 강력해지면 주변에도 갑작스러운 충격을 줄 것이다. 중국은 한편으로는 자신들이 국제 문제를 보는 관점으로 주변국들을 다루려고 할 것이다.”

―중진국인 한국이 강대국인 중국과 피할 수 없는 외교적 마찰을 빚는 상황이 온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한국은 동맹이면서 우방인 미국과 협의해야 할 것이다. 나는 언제나 중국이 국제 시스템에 들어와 질서를 존중하고 건설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창했다. 한국과 중국의 관계가 대결 구도로 가지 않고 협력적 관계가 되기를 바란다. 동북아시아 지역 국가들은 서로 다른 역사를 갖고 있다. 여기에다 한국은 통일 문제를 안고 있다. 미국은 현재 그런 한국의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한다면 전쟁 양상으로 번지게 되나. 미국은 이란 핵개발 저지를 위해 어떤 대가라도 치를까.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이란의 핵무장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따라서 문제는 이런 목적을 어떻게 달성하느냐는 실질적인 차원이다. 이스라엘인들은 지금 군사력을 사용하지 않으면 이란이 응징하기 어려운 ‘면책구역(zone of immunity)’으로 들어간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군사적 공격 외에도 다른 방법들이 가능하다.”

―전례를 찾기 어려운 문제를 두고 중대한 결정을 해왔다. 작은 실수도 용납하기 어려운 결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인가.

“많은 결정은 전례가 없는 것들이었다. 나는 역사를 오래 공부했고 역사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경험하지 못했던 어떤 사안이 예측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갈 때 자연스럽게 내 역할에 따른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키신저 전 장관은 만약 하버드대 교수진으로 살아본다면 그런 충돌하는 문제를 어떻게 다룰지 배울 수 있을 것이라는 농담을 하면서 환하게 웃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앞으로의 사명은 어떤 것이냐’고 물었다. 그는 “다음 생일에 89세가 되는데 뭔가 한계가 있는 나이다”라고 운을 떼면서도 “야망은 이제 없지만 세계평화에 기여하고 싶다. 내가 도울 수 있는 사람들에게, 아직도 내가 배운 지식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쓰고 싶다”고 말했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 헨리 키신저


△ 1923년 5월 독일 출생
△ 1954∼69년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
△ 1969∼75년 미국 국가안보보좌관
△ 1971년 극비리에 중국 방문, 미중 외교 복원의 결정적 계기 마련
△1973∼77년 국무장관
△ 현재 국제컨설팅그룹 ‘키신저 어소시에이트’ 회장
△ 노벨 평화상(1973년) 우드로 윌슨상(2006년) 밴 플리트상(2009년)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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