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진보 단일화 ‘민노출신 임원’ 업체가 2곳 조사
새누리 컷오프 “나이 무관”응답 처리
4·11총선에 출마할 민주통합당-통합진보당의 후보 단일화와 새누리당 후보 확정을 위한 여론조사 경선이 엉망으로 진행된 정황이 속속 드러났다.
민주당과 진보당의 후보 단일화를 위한 여론조사 경선(17, 18일 실시)에서는 여러 문제가 드러났다. 서울 은평을에서 자동응답시스템(ARS) 방식 조사를 맡은 업체의 이사는 민주노동당의 주요 당직자 출신으로 밝혀졌다.
은평을 경선에서 탈락한 고연호 민주당 후보 측은 “은평을 여론조사를 맡은 조원C&I의 강형구 이사가 민노당 수석부대변인 출신”이라고 밝혔다. 조원C&I의 홈페이지엔 강 이사가 2004∼2010년 민노당 전략기획실 기획국장, 총선 중앙본부 수석부대변인, 교육국장 등을 지냈다는 프로필이 명기돼 있다. 진보당은 민노당, 진보신당 탈당파, 국민참여당이 통합해 출범했고 그중에서 민노당 세력이 가장 크다. 은평을에선 여론조사 결과 천호선 진보당 대변인이 이겼다.
고 후보 측에 따르면 경기 안산 단원갑의 경선도 조원C&I가 ARS 조사를 담당했다. 안산 단원갑에선 민주당 백혜련 후보가 3표 차로 진보당 조성찬 후보에게 졌고, 일부 여론조사가 다른 지역구민을 상대로 진행됐다며 민주당이 반발했다.
진보당도 22일 기자회견에서 양당의 후보 단일화를 위한 여론조사 방식이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시인했다. 진보당에 따르면 양당은 KT가 발행한 전화번호부에 등재된 주소를 기준으로 ARS 조사 대상을 정하기로 했다. 문제는 전화번호부가 5년 전인 2007년에 발행돼 결번 비율이 20∼30%나 됐다는 것. 후보 단일화 경선이 설계부터 잘못됐다는 사실을 자인한 셈이다. 여론조사기관인 리얼미터의 이택수 대표는 “왜 주민등록상의 실제 주소를 확인하지 않았는지 의아하다”고 말했다.
동일한 후보 단일화 여론조사 과정에서 한 사람이 두 번 응답할 수 있는 방식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여론조사는 ARS와 임의전화걸기(RDD) 방식으로 나뉘어 실시됐는데, 두 방식 모두 KT 전화번호부를 참조해 대상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즉, 전화번호부에 등재된 A가구가 ARS로 응답한 뒤 전화면접에도 응할 수 있어 1인 2표를 행사할 수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한편 지난달 20일부터 한 여론조사업체에 고용돼 열흘가량 새누리당 후보 여론조사에 참여한 10년 경력의 조사원 A 씨는 23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주먹구구였던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에 따르면 조사원들은 응답자에게 반드시 물어야 할 질문을 건너뛰거나 조사도 하지 않고 임의로 응답지를 체크하기도 했다. A 씨는 “한정된 시간에 지역, 연령 할당을 채우려다 날림 조사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A 씨가 일했던 여론조사 업체는 공직선거법상 여론조사 허용 시간인 오후 10시를 넘긴 시간까지 조사를 진행해 선관위로부터 경고 조치를 받기도 했다.
A 씨와 함께 일했던 한 아르바이트 여대생은 연령대별로 할당된 인원을 채우지 못해 수화기를 붙들고 조사 대상자에게 “나이는 상관없으니 제발 조사에만 응해 달라”며 사정했다고 한다. 조사 주체가 응답자에게 나이를 속일 것을 권유한 셈이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는 “조사 대상의 신뢰성이 떨어지고 조직적 동원이 쉽다는 점을 간과한 채 여론조사 결과가 참고용 자료 이상으로 과대평가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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