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가 보는 총선]<4>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심권호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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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4월 3일 03시 00분


정치권도 ‘스포츠 정신’ 좀 배웠으면

여기서 나고 자랐으니 벌써 40년째다. 경기 성남시 수정구 수진동 주민이라는 이름표를 단 지. 누군가는 고만고만한 주택이 늘어선 후줄근한 동네라지만 내 눈엔 더없이 정겹다. 모르는 이웃 빼고 다 알고, 사통팔달 교통이 좋아 20여 분이면 강남까지 거뜬히 간다. 같은 성남인데 분당만 잘나가서 서운하지 않으냐고? 아니,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수정구는 수정구만의 역사와 정취가 있다.

어린 시절 지금의 주택들은 죄다 한옥이었다. 나란히 늘어선 집들 지붕이 기와로 이어져 매일같이 기왓장 위를 날아다녔다. 기왓장깨나 깨먹었다. 집 앞은 개천이었는데 진즉 복개돼 아스팔트 도로가 들어섰다. 냄새도 났지만 그때 그 시절 물장구가 이따금 그립다.

중학교 시절 레슬링을 만나 경기도에 소년체전 사상 첫 금메달을 안겼다. 서울체고로 진학하면서 더 큰 세상과 만나 소처럼 연습한 끝에 세계 제패의 꿈도 이뤘다. 꿈같은 시간이지만 그사이 서러운 일도 이만저만 아니었다. 경기도 레슬링 1세대라 끌어주는 선배가 없었고, 지연과 학연으로 똘똘 뭉친 집단 사이에서 소외돼 외로운 길을 걸었다.

총선을 앞두고 그 시절을 떠올린다. 생각의 실타래는 ‘그분’들은 다 똑같다는 실망에서 출발한다. 스포츠계든 정치권이든 원하는 자리에 올라가면 끼리끼리 뭉치고, 대수롭지 않게 약속을 어긴다. 돌봐야 할 곳에 무심해진다. 구구절절 밝히기 힘들지만 나도 그런 경험을 했다. 그래서 후보들에게 크게 관심이 가지 않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실망이 되풀이되다 보니 기대마저 접게 되는 악순환이다.

성남 수정구에선 새누리당 신영수 후보와 민주통합당 김태년 후보가 리턴매치를 벌이고 있다. 사실 동아일보와 채널A 보도를 위해 수정구를 한 바퀴 돌면서 찬찬히 후보들을 살필 기회를 가졌다. 후보들이 내놓은 공약을 봤다. 재개발, 교육혁신, 의료원 건립…. 필요한 것들이지만 약속은 지켜질 때 의미가 있다. 토박이 주민으로서 수정구의 주차난과 고도제한 문제도 해결됐으면 한다.

요즘 ‘꼼수’라는 말이 유행이다. 스포츠에도 ‘꼼수’, 즉 반칙이 있다. 때론 반칙도 필요하다. 우리는 신이 아니기에 100% 정직하기란 불가능하니까. 하지만 허용치는 어디까지나 최선을 다한 뒤 어쩔 수 없는 손톱만큼의 꼼수다. 노력 없이 처음부터 꼼수로만 접근하려는 이가 많아지는 게 문제다. ‘정정당당.’ 정치권도 스포츠 정신을 기억하고 승부를 펼친다면, 국민으로부터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심권호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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