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태양절(15일)과 장거리로켓 발사(13일)를 계기로 북한 당국의 초청을 받아 열흘간 북한을 방문해 평양과 평안북도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등을 취재했던 서방의 한 기자가 동아일보에 북한 방문기를 보내왔다. 그는 자신의 이름과 소속사를 밝히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 평양에 머문 건 열흘 정도였다. 호텔이 부족해 국가별로 취재진을 분류해 서로 다른 곳에 배정했다. 남미와 아프리카 등 북한과 사이가 좋은 나라의 취재진은 시설이 더 나은 호텔에서 묵었다. 기자들을 초청해 놓고 다음 날 일정을 알려주지 않는 기이한 행사였다. 오전 8시경 호텔 로비에 나가면 그제야 안내원이 ‘오늘은 OO를 간다’고 알려주는 식이었다.
문제의 ‘동창리 발사장’은 8일 다녀왔다. 그날따라 새벽에 집결하라고 하더니 기차에 태웠다. 방마다 침대가 두 개씩 들어있는 침대열차였다. 안내원은 우리에게 “보통 국제열차는 방에 침대가 4개 있다. 그러니 이 열차가 어느 분이 쓰던 건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른바 ‘1호 열차’, 김정일이 생전에 타던 열차 중 하나라는 것이다. 객실은 흠잡을 데 없이 깨끗했고 창문은 검은색 필름을 붙여 놓았다. 밖에서는 안을 들여다볼 수 없었다.
5시간 정도 달리는 동안 주변에 펼쳐진 풍경은 번화한 평양과는 매우 달랐다. 산과 들은 중국 동북지방을 연상케 했지만 사람들은 죄다 새까맣고 작았다. 밭에서 일하는 청년들도 중학생 정도로 보일 만큼 작았고 영양부족 상태인 듯했다.
한국을 잘 아는 동료 기자가 ‘남남북녀’라고 말해줬다. 하지만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미인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그에 비하면 평양은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룬 것처럼 보였다. 도로에는 중국산 차량과 평화자동차 차량이 많았다. 사람들은 모두 휴대전화를 들고 있었다. 안내원 말로는 평양주민의 70%가 휴대전화를 쓰고 있단다. 미국 프로농구를 상징하는 NBA나 미키마우스가 그려진 옷을 입고 있는 아이도 많았다. 여기도 서구문화가 많이 들어와 있었다. 만수대지구에는 아파트가 들어서 아시아의 잘사는 나라를 연상케 했다.
하지만 행사를 하거나 거리에 사람이 많이 몰려 있는 곳에 가보면 뭔가 퀴퀴한 냄새가 났다. 동료들은 이곳 사람들이 샤워를 안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내 생각에는 안 하기보다는 못한 게 아닌가 싶다. 일반 가정에서 온수를 기대하기란 쉽지 않을 듯했다.
김정은을 두 번 취재할 수 있었다. 13일 김일성 김정일 동상 제막식과 15일 군사 퍼레이드 때였다. 키는 170cm 정도 되는 듯했다. 사진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비대했다. 배는 툭 튀어나왔고 뒷목은 살로 접혀 있는 모습이었다.
아직도 이해가 안 되는 건 김정은의 웃음이다. 13일 제막식은 미사일 발사가 실패한 뒤에 있었다. 하지만 행사장에 들어선 그는 기분이 좋은 듯 시종일관 웃으며 최룡해 총정치국장과 대화를 나눴다. 웃음 외에는 군중 앞에서 보여줄 표정연기가 없는 건지, 아니면 정말로 기쁜 건지 모를 일이다.
북한이 폐쇄국가라는 것은 미사일 발사 당시의 상황이 잘 보여줬다. 조선중앙통신의 발표가 나오기까지 오전 내내 우리는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한 기자는 한국의 보도내용을 보고 외무성이 파견한 안내원에게 “위성 발사가 실패했다”고 말하자 안내원이 “한국이 미사일로 우리 공화국의 위성을 요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며 황당해했다.
김정은 우상화작업은 치밀하고 철저하게 진행되고 있는 듯했다. 우리가 접할 수 있었던 북한 사람들은 말끝마다 ‘김정은 대장님께서’를 붙였다. 수영복을 입고 있는 여성들의 사진이 공개돼 눈길을 끌었던 김일성종합대 수영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취재진이 “수영복이 좋다”고 말을 건네자 여자들은 곧장 “김정은 대장님께서 하사하셨다”고 답했다.
방송사에서 온 기자들은 이 우상화작업 때문에 예상치 않은 고생을 해야 했다. 안내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화면을 송출해야 하는데 김정은의 영상은 명확한 규정을 지켜야 했다. 김정은은 단상에 있지 않는 한 전신이 다 나와야 한다. 신체 일부가 잘리면 안 된다. 또 핸드헬드(카메라를 들고 찍는 기법)로 찍은 영상에 김정은이 나올 경우 화면이 흔들려선 안 된다.
또 김정은이 나오는 행사에는 휴대전화와 노트북 컴퓨터를 절대 들고 갈 수 없었다.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은 본국과 통신할 방법이 없어 행사가 끝나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대부분의 행사는 외국 기자들의 눈에는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내용이 알차서가 아니라 처음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12일 열린 ‘주체사상 세계대회’는 참기 어려운 무료함의 연속이었다. 아프리카 등에서 온 학자들이 주체사상의 역사와 중요성, 해당국에 적용하는 문제 등을 강연했는데 앉아 있기가 힘들었다. 북한 외무성이 정해 놓은 행사인 탓에 마음대로 자리를 뜰 수도 없었다.
태양절 행사 취재를 끝으로 평양에서 철수했다. 비행기 트랙에 올라설 때 외무성 직원이 “이번에 100명이 넘는 기자를 초대한 것은 김정은 대장님께서 결정한 것이다. 다음에 또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평양에서 내가 들은 ‘김정은 대장님께서’라는 말이 과연 몇 번이었을지 계산조차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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