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밀한 검토 없이 포퓰리즘에 떠밀려 시작한 복지 정책은 한때의 물거품이었다. 지난해 12월 31일 국회가 올해 3월부터 2세 이하 영아 보육료를 소득 수준에 상관없이 전액 지원하기로 했지만 당장 이달부터 이 사업이 중단 위기에 놓이는 지방자치단체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전국시도지사협의회가 230개 기초지방자치단체의 0∼2세 영유아 보육료 예산의 고갈 시기를 분석한 결과 강원 양구군과 인제군, 충북 괴산군은 이달 말이면 이 사업 예산이 바닥날 것으로 예상됐다. 5월에는 경기 과천시, 강원 영월군 고성군 양양군, 충북 보은군 영동군 증평군 진천군 음성군, 충남 아산시 계룡시 등 11곳이 사업을 멈춰야 한다. 8월이면 전체의 43%에 이르는 지자체에서 0∼2세 보육료 예산이 모두 소진될 것으로 보인다.
0∼2세 예산이 동나도 당장 보육료 지원이 끊기는 것은 아니다. 3, 4세에 배정된 보육료를 돌려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건복지부 역시 9월이면 올해 책정된 이 돈까지 모두 소진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방정부가 추가경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으면 정치권이 달콤하게 내걸었던 무상보육이 연말까지 지속되기 어렵다는 뜻이다.
○ ‘부자 보육료 지원’에 지방비 3400억 원 늘어
현재 영유아 보육료는 평균 국비 50%, 시도와 시군구의 예산을 합친 지방비 50%로 지급한다. 재정이 건전한 서울시는 부담해야 할 비율이 80%까지 올라간다. 16개 시도 보육담당자들은 한결같이 “이미 예산 편성이 끝난 지난해 12월 31일 갑자기 0∼2세 무상보육 실시가 발표됐다”며 “중앙정부와 국회가 단 한마디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당초 소득 하위 70%까지만 지원되던 0∼2세 보육료 예산은 국비 1조5514억 원, 지방비 1조5108억 원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말 전액 무상보육이 결정되면서 예산은 국비 1조9256억 원이 배정됐다. 국비에 맞춰 일정 비율로 편성해야 하는 지방비는 1조8531억 원으로 3423억 원이 늘었다.
문제는 무상보육으로 전국 0∼2세 어린이집 취원율이 55%로 8%포인트 이상 올랐다는 점이다. 김홍환 시도지사협 연구위원은 “비용이 지원되니까 새로 어린이집에 다니는 영아가 늘어 지방비 부담이 9000억 원가량 늘어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시와 자치구만 해도 올해 0∼2세 보육료 전액 지원에 1062억 원을 추가로 마련해야 한다.
○ 포퓰리즘의 부작용 피해는 국민
전문가들은 사회적 합의와 정교한 정책 수립 과정을 동반하지 않은 복지 포퓰리즘의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으로 분석했다. 김현아 한국조세연구원 연구위원은 “복지 사업은 한번 확대되면 수혜자의 반발이 커 줄일 수 없다”며 “예산과 수요를 꼼꼼히 따져보지 않은 사업 결정은 위험한 일”이라고 말했다.
백선희 서울신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정책 우선순위로 본다면 0∼2세는 무상보육보다 육아휴직 확대나 양육수당 지원이 바람직하다”며 “표만 의식한 국회와 정부의 즉흥 결정으로 보육정책이 엉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광역지자체보다 재정이 열악한 기초지자체는 복지 부담이 예산의 절반에 육박하면서 다른 사업을 접어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국비와 지방비 매칭으로 이뤄지는 복지 사업 때문에 지방 재정이 악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전국 지자체 평균 재정자립도는 51.9%. 2006년 54.4%에서 매년 낮아지고 있다. 특별·광역시는 68.6%로 그나마 양호하지만 자치구는 36.6%, 군은 17.1%까지 떨어진다.
한편 이날 열린 총리실 지방재정대책팀(TF)에서는 보육예산 고갈 시기를 두고 격론이 벌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무상보육 대상을 최대 75만 명, 지자체는 110만 명으로 추산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보육 수요와 예산을 정확히 조사한 뒤 다시 회의를 열어 추가 지원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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