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1월 23일 미국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사진)를 나포한 직후 북한은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게 한반도 전쟁 발발 시 즉각 개입해달라고 요청했으나 브레즈네프 서기장은 이를 거절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우드로윌슨센터 ‘북한국제문서연구사업(NKIDP)’ 팀은 24일 홈페이지에 공개한 옛 공산권 국가 외교전문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을 밝혔다.
평양 주재 루마니아대사관은 1968년 3월 17일 본국으로 보낸 극비 전문에서 “2월 모스크바를 방문했던 김창봉 북한 인민무력부장은 브레즈네프에게 ‘한반도에 전쟁이 발발하면 북한을 방어하기 위해 소련이 즉각 개입하겠다는 확답을 달라’고 요청했다”고 보고했다. 루마니아대사관은 옛 소련 소식통으로부터 이런 얘기를 전해 들었다는 체코 외교관을 16일 평양에서 만났다며, 대화 내용을 자세히 보고했다.
전문은 “브레즈네프는 (김창봉과의) 3시간에 걸친 면담에서 한반도 전쟁 재발을 막기 위해 지속적으로 북한을 설득했고, 이런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고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전문에 따르면 당시 김 부장은 브레즈네프로부터 전쟁 발발 시 (소련이) 개입한다는 원칙적인 약속만이라도 이끌어내려고 시도했지만 브레즈네프는 “북한이 내 제안을 무시하면 북한의 지원 요청에 긍정적으로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옛 소련 외교관은 “브레즈네프가 만약 김 부장의 요청에 호응했거나 애매한 방식으로라도 보증하듯이 답변했다면 분명히 전쟁이 일어났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기록됐다.
이 밖에도 NKIDP가 공개한 외교문서 중에는 청와대 습격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 당시 저우언라이(周恩來) 중국 총리가 김일성에게 양국 관계를 복원하자는 서한을 보냈다는 정보사항도 포함되어 있다. :: 푸에블로호 사건 ::
북한 해군 초계정이 1968년 1월 23일 원산항 앞 공해에서 미국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를 나포한 사건. 미국은 즉각 송환을 요구하며 핵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를 한반도에 배치했다.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북한 영해 침범’에 대한 시인·사과 문서를 받아낸 뒤 승무원 82명과 사망자 유해 1구를 돌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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