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의 재도전이다. 2002년에는 대선후보 여론조사 지지율에서 1, 2위를 기록할 만큼 ‘태풍의 핵’이었던 정몽준 새누리당 전 대표. 하지만 강산은 변했다. 현재 그의 지지율은 1, 2%대에 머문다. 당내 기반도 약하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를 비롯해 여러 비박(비박근혜) 대선 주자 중 하나인 상황이다. 그런 그에게 경제와 안보의 불안은 새로운 기회일지 모른다. 29일 대선 출마 기자회견에서도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과의 차별화 지점으로 자신의 다양한 국제 경험을 내세웠다.
○ ‘어게인(again) 2002’의 완수?
정 전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지금 대한민국은 갈림길에 서 있다”며 “세계가 부러워하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기적을 만든 것은 정치지도자라기보다 위대한 국민이다. 10년 전 2002 월드컵 때 온 국민이 하나가 된 소중한 기억이 있다. 국민이 하나가 되면 대한민국은 다시 뛸 수 있다”고 말했다.
‘어게인 2002’는 그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다. 그해 8월부터 정 전 대표는 각종 대선 여론조사에서 30% 안팎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특히 2040세대에서 상대 후보들을 압도했다. 당시엔 본선 진출에 실패하며 분루를 삼켰지만 젊은층의 지지를 다시 이끌어낸다면 박 위원장과 겨뤄볼 수 있다는 게 정 전 대표 측의 기대다. 그는 평소 지지율 격차에 대해 “지지율은 수증기와도 같은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정 전 대표는 “기업을 경영하고, 외교 현장에서 뛰어보고, 하나 되는 대한민국을 만들었던 경험을 살려 대한민국의 새 역사를 쓰겠다”고 밝혔다. 현대중공업 회장,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 등의 경력과 19대 국회 최다선(7선) 의원의 경험을 자신의 최대 자산으로 내세운 셈이다. 이는 다른 후보와 차별화하는 핵심 전략이기도 하다.
정 전 대표는 “우리 시대의 특징은 국내, 국외 문제를 구별할 수 없는 상호의존의 시대라는 점”이라며 “이런 문제는 학교에서 공부했다고 해서 충분하지 않다. 몇 사람을 만났다고 해서 도움이 되는 지식이 생기지 않는다. 바깥세상의 문제와 흐름을 정확히 이해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이어 “바깥세상과 관련한 일은 내가 박 위원장보다 많이 했고, 이런 것들이 박 위원장과 다른 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박 위원장은 세가지 딜레마에 봉착했다”며 박 위원장을 정조준했다. 그는 “새누리당은 지도자는 보이는데 정당은 안 보이는 기막힌 현실에 놓였다”며 ‘박근혜 1인 체제’를 비판했다. 이어 “박 위원장은 복지논쟁을 유발했는데, 전체적인 경제위기 속에 성장 없는 복지가 가능하겠느냐”고 되물었다. 또 “유연한 대북관계는 필요하다”면서도 “(박 위원장이) 남북관계를 추상적이고 가볍게 보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대북관계에서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친박계인 윤상현 의원은 정 전 대표의 박 위원장 비판에 대해 “박 위원장은 당의 비상시기에 구원투수로 당을 살리라는 요청을 받고 나와 정치생명을 걸고 총선을 지휘한 것”이라며 “최전선에서 싸운 당 장수를 왜곡된 사실로 비난하는 것은 이적행위이며 적전분열행위”라고 반박했다.
○ ‘준비된 후보’ 이미지 부각 노력
정 전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경제, 복지, 외교, 교육, 노동 등 분야별 해법을 제시하는 등 ‘준비된 후보’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의 정치는 실종됐고, 차가운 가슴과 뜨거운 머리의 포퓰리즘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며 “기술개발과 기업투자를 활성화하고 개방과 경쟁을 통한 경제 살리기에 힘쓰겠다. 대기업도 혜택을 받은 만큼 책임을 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복지 분야에서는 “기본적인 사회안전망도 취약한데 새로운 복지정책을 나열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사다리(계층 상승), 일자리, 울타리(사회안전망)를 튼튼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정 전 대표는 기자회견장인 국회 정론관에 프롬프터(자막 재생기) 2대를 단상 양쪽에 설치하는 등 대통령 기자회견과 같은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부인 김영명 씨는 정 전 대표와 함께 기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는 등 ‘밀착 내조’에 들어갔다. 하지만 기자회견장에 참석한 현역 의원은 안효대 정양석 의원 등 2명뿐으로 정 전 대표의 취약한 당내 상황을 여실히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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