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의 친노(친노무현)들, 만약에 당의 흐름이 친노란 어떤 계파의 독식으로 간다면 저도 대권 출마를 고려하겠다.”
4월 24일 민주통합당 박지원 최고위원은 출입기자 만찬에서 “그놈의 친노”란 표현을 여러 차례 썼다. 친노그룹에 대한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낸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2003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승인했던 대북송금 특별검사법을 거론했다. 사실 김대중 전 대통령(DJ) 시절 ‘2인자’였던 그가 한동안 ‘고난의 행군’을 하게 된 것은 친노그룹과 대북송금 특검법 때문이었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의 민정수석비서관으로서 대북송금 특검법의 법률적, 정무적 판단을 총괄한 사람은 친노그룹이 대선후보로 밀고 있는 문재인 상임고문이다.
박 최고위원은 현대그룹으로부터 150억 원을 받은 혐의(직권남용) 등으로 구속 기소돼 노 전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해인 2007년 2월 특별사면이 될 때까지 옥중에서 지냈다. 천신만고 끝에 현대 비자금 150억 원 수수 혐의는 무죄가 확정됐으나 대기업에서 1억 원을 받은 혐의는 유죄가 인정돼 18대 총선 때 민주당 공천에서 탈락하여 무소속 출마란 우회로를 선택해 국회에 들어와야 했다.
정책위의장, 원내대표로 입지를 다지다 지난해 가을까지는 차기 당대표로 유력시됐으나 느닷없이 손학규 전 대표가 이해찬 상임고문, 문 고문 등 당 밖의 친노그룹과 신당 창당을 합의하는 바람에 1·15 전당대회에서는 4위로 간신히 최고위원에 당선되는 굴욕을 겪었다. 그만큼 “그놈의 친노” 발언에는 한이 담겨 있다.
그러나 “그놈의 친노” 발언 바로 다음 날인 4월 25일, 박 최고위원은 친노그룹과 손을 잡았다. 친노그룹의 좌장 격인 이 고문으로부터 ‘이해찬 당대표-박지원 원내대표’라는 구체적인 역할분담 제안을 받고 수용한 것. 더구나 이 고문은 박 최고위원에게 제안하기 전 자신이 ‘가장 이상적인 대선후보’로 지목한 문 고문과 사전 조율을 거쳤다.
아무리 정치에서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일도 많지만 박 최고위원이 선뜻 친노그룹과 같은 배를 탄 데 대해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반응이 많은 것은 오랜 악연 때문이다. 당내에선 그가 1·15 전대 트라우마로 인해 내심 원내대표로 방향전환을 고심하던 터에 이 고문의 제안을 받았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사실상 ‘친노 정당’에서 친노그룹과의 제휴 없이 당대표로 선출되기란 요원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란 얘기다.
박 최고위원은 30일 정세균 상임고문, 한명숙 전 대표와 오찬 회동을 가졌다. 그는 “원내대표가 되면 반드시 중립을 지킨다”며 이-박 연대가 ‘문재인 대선후보 옹립’을 위한 사전 단계라는 관측을 불식시키는 데 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내 대선주자이자 원내대표 경선에서 전병헌 의원을 지원하고 있는 정 고문을 다독인 것이다.
그러나 정 고문은 회동 후 보도자료를 내고 “이-박 연대는 내용이 틀렸다. 통합이든 단합이든 하나가 되는 것은 진정한 성찰에서 나오는 것이지 기획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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