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 깨지나]“당원 총투표로 사퇴 결정” 이석기의 꼼수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5월 8일 03시 00분


투표권 지닌 당원 65%가 당권파… 승산 있다고 본 듯
허술한 당원 관리 도마에… 유시민 “명부 검증이 우선”

통합진보당 당권파의 ‘몸통’으로 알려진 비례대표 2번 이석기 당선자가 7일 자신에 대한 사퇴 압박을 거부하면서 ‘당원 총투표’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 당선자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당내 경선을 거쳐 순번을 받은 비례대표 후보 14명의 사퇴를 권고한 전국운영위원회의 결정에 대해 “당원 총투표를 당 지도부에 요청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저는 지도부의 공천이 아니라 당원들의 선택으로 비례대표에 출마한 사람이다. 당원이 직접 선출한 후보의 사퇴는 전체 당원의 손으로 결정해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유시민 공동대표도 이날 대표단 회의에서 “전국운영위의 결정이 제대로 효력을 가지려면 12일 (당내 최고 대의기구인) 중앙위원회 의결을 받아야 하며, 그래도 어려우면 당원 총투표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건부이긴 하지만 당원 총투표 요구를 수용할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통진당 당권파와 비당권파의 접점이 당원 총투표로 수렴되는 듯한 양상이다.

걸림돌은 당원 명부의 신뢰성이다. 유 대표는 당원 총투표의 전제 조건으로 “당원 명부에 대한 전면적 검증과 정비 작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부정 경선을 지켜본 결과 ‘유령 당원’이 적지 않다는 걸 확인한 상황에서 당원 범위를 정확하게 하지 않고서는 당원 총투표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 당원 전체 데이터 없어

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이 당선자가 당원 총투표를 제안한 배경에는 “수에서 앞선다”는 자신감이 깔려 있다. 통진당은 지난해 12월 민주노동당(NL계·민족해방계열)과 국민참여당(친노무현 그룹), 진보신당 탈당파(PD계·민중민주계열) 등 3개 정파가 통합하며 탄생했다. 이 중 NL계인 경기동부연합과 광주전남연합이 주축인 당권파가 투표권을 지닌 당비 당원의 65%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당원 총투표를 하면 승산이 있다고 본 것이다. 이 당선자가 “사퇴가 절대선이고 사퇴하지 않는 게 절대악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평당원의 명예는 철저히 은폐되고 배제되고 훼손됐다”며 당원의 명예를 언급한 것도 ‘믿을 것은 당원뿐’이라는 판단이 깔려있다.
▼ 전체명부 없이 “총투표”… 비당권파 “13만 당원 허수 많아” ▼

유 대표가 ‘조건부 수용’ 의사를 내비친 것은 당권파가 막무가내로 버티는 상황에서 당을 깨지 않으려면 현실적으로 이 방법밖에 없다는 판단을 했음 직하다. 다만 총투표가 채택되더라도 당원 명부에 대한 정비 이후일 것으로 보인다. 이 당선자의 제안이 수용될지는 12일 당내 최고 대의기관인 중앙위원회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참여당, 진보신당의 경우 중앙당에서 당원 데이터를 관리해온 것과 달리 민노당은 당원 전체 명부가 없었다. 민노당은 각 지구당의 지역위원장이 당원을 자체 관리하다 보니 중앙당은 지역에서 당비를 어떻게, 얼마나 허수로 납부하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창당 5개월이 지난 통진당은 여전히 당원 전체 데이터가 없어 당원 게시판조차 만들지 못하는 상황이다. 비당권파를 중심으로 “전체 당원 13만 명에 허수가 많다. 당비 대납 가능성도 의심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채널A 영상] ‘레드 카드’ 이석기 “관중석에 물어보자”

○ 꽁꽁 숨은 이석기

이 당선자는 이날 서울 동작구 대방동 통진당 당사에서 열린 ‘대표단-당선자 비공개 회의’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전 11시 회의가 시작되고 1시간 40분이 지나서야 당직자에게 “중요한 일정이 생겨 회의 참석이 어렵다”고 문자로 통보했다. 기자들이 당사를 찾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모습을 감춘 것으로 보인다. “베일에 싸여 있다”는 세간의 평답게 그는 자신의 거취를 오후 2시 14분 당 대변인을 통해 보도자료로 알렸다.

전국운영위 결정 이튿날인 6일 김재연 비례대표 3번 당선자가 기자회견을 통해 사퇴 거부를 천명한 것도 실제로는 이 당선자가 뒤에서 조종한 것이라는 해석이 많다. 그는 인터넷매체 ‘민중의 소리’ 이사, 정치컨설팅 및 홍보·광고 기획업체 ‘씨앤피전략그룹’ 대표, 여론조사 업체인 사회동향연구소 대표 등을 통해 당의 일감을 따내고 자금을 모아 ‘경기동부연합 핵심 돈줄을 쥐고 있는 사람’으로 꼽힌다.

동아일보 기자는 6일 오후 5시부터 7시간 동안 서울 동작구 사당동 이 당선자의 자택 앞에서 그를 기다렸으나 만날 수 없었다. 자택의 불은 꺼져 있었고 누구의 출입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최근 유시민 대표에게 ‘당권 거래’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지는 등 무대 뒤에서 굵직한 일을 직접 챙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남희 기자 irun@donga.com  
서동일 기자 dong@donga.com  
#이석기#당원 총 투표#통합진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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