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통영의 딸’ 신숙자 씨의 생존 여부에 대해 유엔에 공식 답변서를 보낸 이유는 무엇일까. 북한이 과거 유엔의 각종 질의나 자료 요청에 제대로 응하지 않았던 만큼 이번 조치는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유엔인권이사회 산하 실무그룹을 통한 진정 절차는 과거에도 쓰인 적이 있지만 지금까지 북한은 이에 답변한 적이 없다. KAL기 납치사건(1969년)의 피해자 가족들은 2010년 6월과 8월 ‘강제실종에 관한 실무그룹’에 납북자의 생사를 확인해 달라며 3건의 개인 진정을 냈지만 북한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이 매년 북한인권보고서 작성에 앞서 요청하는 자료도 일절 내놓지 않고 있다.
윤여상 북한인권정보센터 소장은 9일 “이미 요코다 메구미 사건을 경험한 북한이 사안의 민감성을 모를 리 없는데도 선뜻 답변을 내놓은 것은 주목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요코다 메구미는 1977년 납북된 일본인이다. 그의 생사를 확인해 송환하라는 일본의 요구에 북한은 2004년에 “우울증으로 자살했다”며 그의 유골을 보냈다. 그러나 유전자 감식 결과 메구미의 유골이 아니라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각종 논란이 계속됐다.
북측의 달라진 태도는 새 지도자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달리 국제여론에 신경을 쓰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정은은 지난달 장거리로켓 발사에 실패한 직후에도 이를 시인하는 등 해외의 시선을 의식하는 듯한 행보를 보였다. 신 씨 문제 해결에 나섰던 하태경 국회의원 당선자는 “북한이 인권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대응할 부분은 대응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며 “김정은 정권과는 인권대화 혹은 인권 관련 협상이 가능하지 않겠냐는 희망 섞인 관측도 나온다”고 전했다.
KAL기 납치사건과 신 씨 사건의 성격이 다르다는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KAL기 사건은 북한이 벌인 납치극이 분명했고, 북한이 돌려보내지 않은 11명도 본인 의사에 반해 억류됐음이 송환된 다른 탑승자들의 증언을 통해 확인됐다. 반면 신 씨의 남편 오길남 씨는 비록 북측의 회유에 넘어갔다고 해도 자진 월북의 형식으로 가족을 이끌고 북한에 들어갔다.
북한에 남아 있는 두 딸을 체제선전과 대남협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점도 이런 이례적인 조치를 가능하게 했을 수 있다. 북한은 과거 납북 일본인 요코다 메구미의 남편인 김영남 씨나 소가 히토미의 남편 찰스 젱킨스 씨에게 그랬듯이 신 씨의 두 딸에게도 대외 선전에 나서라고 강요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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