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를 국빈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은 15일 옛 수도 양곤을 방문해 미얀마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본 뒤 밝은 미래를 위한 한국의 협력을 약속했다. 특히 이 대통령은 ‘미얀마의 개방 노력을 돕겠다. 민주주의와 국민 존엄을 향한 의지를 높게 평가한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이 같은 대통령의 양곤 행보는 부자손(父子孫) 3대 세습기를 맞아 연일 호전적으로 나오는 북한을 동시에 겨냥해 “미얀마의 선택을 주목해 달라”고 간접 압박한 것이기도 하다. 북한과 미얀마는 수십 년간 폐쇄적 체제를 유지하며 독재를 매개로 우방관계를 맺어왔다. 미얀마의 민주화 흐름은 북한의 권부에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대통령은 전날 수도 네피도에서 테인 세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뒤 아웅산 수치 여사와의 면담을 위해 이날 아침 전용기로 50분 가까이 이동해 400km 남쪽의 양곤에 도착했다. 수치 여사는 가택연금 시절을 포함해 대개 자신의 자택에서 외부 인사와 만나지만 이 대통령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양곤의 한 호텔로 면담 장소를 정했다.
이 대통령은 수치 여사 면담 직후 아웅산 국립묘지를 방문했다. 29년 전 전두환 당시 대통령을 수행했던 고위 관료 17명이 북한의 폭탄테러로 목숨을 잃은 현장인 탓에 이 대통령의 방문은 철통같은 경호 속에 이뤄졌다. 경호 인력을 대폭 늘린 것은 물론이고 ‘암살대응팀’으로 불리는 요원들이 이 대통령을 밀착 경호했다.
이 대통령은 미얀마 독립의 영웅이자 수치 여사의 아버지인 아웅산 장군의 묘비가 있는 계단을 직접 올라 ‘17대 대한민국 대통령’이라고 쓰인 조화 앞에서 머리를 숙였다. 이 대통령은 남북의 적대관계를 상징하는 역사의 현장에서 “이런 역사는 다시는 일어나선 안 된다”며 북한의 변화를 촉구했다. 다만, 북한을 직접적으로 자극하는 표현은 피했다.
이에 앞서 14일 이 대통령은 한-미얀마 정상회담에서도 테인 세인 대통령에게 ‘북한의 개인교사’가 되어 줄 것을 당부했다. 그는 “한 나라의 운명은 국제사회가 아니라 그 나라 스스로 어떤 결정을 어떻게 내리느냐에 달려 있다”며 “북한에 그런 충고를 해달라”고 했다.
아울러 이 대통령은 미얀마로부터 ‘북한에서 재래식 무기를 추가로 도입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이끌어 냈다. 테인 세인 대통령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2009년 북한의 핵실험 직후 채택한 결의 1874호를 준수하겠다”고 말했다. 이 결의는 북한과 모든 무기 거래를 금지하도록 규정했다.
또 테인 세인 대통령은 “러시아제 10MW급 교육용 원자로 2기를 도입하려 했지만 여의치 않아 중단한 적은 있다”며 북한과의 핵개발 협력설을 부인했다. 미국 정보당국은 미얀마 군부가 2000년대 중반 북한의 핵 기술을 이전받으려 했다는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미얀마에 수감된 40대 남성 탈북자도 수일 내로 석방돼 한국행이 성사될 것이라고 청와대는 밝혔다. 이 탈북자는 불법입국 혐의로 2010년 3월 5년형을 선고받은 뒤 복역해 왔고, 한국 정부의 석방 노력이 결실을 보지 못하다가 이번에 정리됐다.
테인 세인 대통령은 이 대통령의 전기 ‘신화는 없다’가 최근 미얀마어로 번역 출간된 것을 계기로 “이 책을 미얀마의 전체 초등학생에게 읽혀 가난을 극복하고 미래를 준비하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테인 세인 대통령은 자필로 서명한 전기를 선물했다.
이 대통령은 미얀마의 개발을 돕는 과정에서 한국 대기업의 대규모 투자는 법률적 보호 장치가 마련된 뒤에 본격화할 것이며 그동안은 한국의 성공과 실패 경험 등을 전수하고 미얀마의 산업인력 개발을 돕겠다는 뜻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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