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서 발굴된 6·25 국군유해 첫 봉환]귀환 알린 ‘고향의 봄’… 軍통수권자, 거수경례로 영웅을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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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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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편히 쉬소서” 이명박 대통령(가운데)과 김관진 국방부 장관(왼쪽) 등이 25일 국군 전사자 12명의 유해를 실은 C-130 수송기가 서울공항에 도착하자 거수경례로
맞이하고 있다. 성남=청와대사진기자단
“이제 편히 쉬소서” 이명박 대통령(가운데)과 김관진 국방부 장관(왼쪽) 등이 25일 국군 전사자 12명의 유해를 실은 C-130 수송기가 서울공항에 도착하자 거수경례로 맞이하고 있다. 성남=청와대사진기자단
25분 동안 아무도 말이 없었다. 군악대의 환영곡과 레퀴엠(진혼곡)이 흘렀고, 조포(弔砲) 21발이 발사됐을 뿐이다. 영웅 12명이 62년 만에 귀향하는 시간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엄숙함이 압도했다.

김용수, 이갑수 일병 등 6·25전쟁 때 사망해 북녘 땅에 묻혀 있던 국군 유해 12구는 25일 이렇게 조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1953년 정전협정 체결 후 북한지역에서 전사한 국군 유해가 돌아온 것은 처음이다.

군 통수권자인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을 직접 찾았다. 북녘의 차가운 땅속에 묻혀 있다가 미국 하와이 미군시설을 거쳐 먼 길을 돌아온 병사의 귀환 신고를 받는 자리였다.

검은색 양복에 검은색 넥타이를 맨 이 대통령은 김관진 국방부 장관, 제임스 서먼 한미연합사령관 등과 함께 오전 8시 30분 서울공항 활주로에 섰다. 5분 동안 선 채로 한국 공군 특별기가 착륙하는 모습을 응시했다. 군악대는 국군 용사의 귀환을 환영하며 ‘고향의 봄’을 연주했다. 이 대통령 앞쪽에는 이들 가운데 신원이 확인된 김 일병과 이 일병의 영정을 가슴에 안은 군 후배들이 도열했다.

C-130 수송기 문이 열리고 유해를 담은 상자가 하나씩 운구차로 옮겨졌다. 유해 상자는 대형 태극기에 싸여 있었다. 곧바로 레퀴엠이 연주됐다. 이 대통령은 고개를 숙여 묵념했고, 조포 21발이 차례로 발사되는 동안 거수경례로 최고의 예를 갖췄다. 운구봉송대가 유해 12구를 모두 운구차로 옮기자 이 대통령은 발걸음을 운구차 쪽으로 돌려 따라갔다.

유해를 실은 군용 지프 12대가 도착 25분 만에 공항을 빠져나가 국립서울현충원으로 향하자 이 대통령은 다시 한 번 거수경례를 하면서 고인들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이 대통령은 오늘의 주인공을 맞이하며 조역의 역할에 충실했다.

이 대통령의 곁에는 이 일병의 딸 이숙자 씨가 서 있었다. 7세 때 전쟁터로 보낸 뒤 아련한 추억 속에 남아 있는 아버지를 맞는 행사 내내 눈물을 멈추지 못하다가 끝내 오열했다. 최금락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이 대통령은 아무런 위로의 말을 할 수 없었다. 오직 그의 손을 오랫동안 잡아주었다”고 전했다.

이 대통령은 수송기 도착에 앞서 서울공항 접견실에서 유족들과 20분간 만났다. 이 대통령은 “이분들이 목숨을 걸고 싸워서 대한민국을 지켰다. 가장 큰 국가 공로자다”라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이 대통령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은 끝까지 찾아야 한다”며 “통일 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돌아가신 분들의 유해를 찾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또 “미군 당국이 유해를 보내주겠다고 했지만 ‘우리가 가서 모셔오겠다’고 했다”며 봉환 과정의 이야기도 소개했다. 이숙자 씨는 “국가가 힘을 써 주셨다. 우리나라가 복받을 나라가 됐다고 생각했다”고 감사의 뜻을 밝혔다. 곁에 있던 서먼 연합사령관은 “이처럼 고귀하고 숭고한 행사에 참석해 영광이다. ‘전쟁 영웅’의 헌신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봉환이 결정되는 과정에서 참모들에게 만시지탄(晩時之歎)의 아쉬움을 표시했다고 한다. 한 참모는 “과거 정부 때 남북 간 유해 송환 합의가 이뤄졌지만 북한의 도발로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성과가 없었다는 점을 이 대통령이 애석해했다”고 말했다.

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6·25 국군유해#봉환#李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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