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2008년 말 “녹색성장 관련 국제기구를 신설하겠다”고 천명한 뒤 한국 외교는 큰 절벽을 마주한 느낌이었다. 한국이 세계에 제시한 녹색성장이란 어젠다 자체는 주목을 끌고 있었지만 여러 나라가 분담금을 내는 국제기구를 한국에 설치하는 게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가 초기에 염두에 둔 조직은 물 관련 국제기구였다. 2009년 외교통상부와 국토해양부는 내부 보고서에서 “유엔 산하에 물을 테마로 정부 간 기구를 만드는 것을 검토했지만 난망하다”는 부정적 의견을 냈다. △외국과 장기간 협의가 필요하고 △초기 의제 설정이나 재원 마련도 쉽지 않고 △한국 주도 설치에 국제사회의 반대가 클 것이라는 이유였다.
그 후 3년. 한국이 서울에 비영리 재단으로 설립한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Global Green Growth Institute)가 8개국이 분담금을 내는 국제기구로 거듭나게 됐다. 이 대통령과 덴마크, 호주,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노르웨이, 영국, 멕시코 등 8개국 정상과 대표는 20일 브라질 ‘리우+20’ 환경정상회의에서 GGGI를 국제기구로 전환하는 협정 서명식을 연다. 한국이 제시한 테마를 다루는 첫 국제기구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원칙적으로 국제기구는 세 나라 이상만 참여하면 설립이 가능하다. 지난해 서울에 본부를 두고 활동을 시작한 한중일 협력사무국도 국제기구다. 1997년 유엔개발계획(UNDP) 주도로 만든 국제백신연구소(IVI) 본부도 한국에 있다. 그러나 주변국과 공동 추진하거나 유엔기구의 힘을 빌리지 않고 한국이 주도적으로 국제기구를 설립하는 것은 처음이다.
GGGI 운영을 위해 한국은 매년 1000만 달러 안팎을 낼 예정이다. 나머지 7개국은 첫 3년 동안 매년 500만 달러씩의 분담금을 내기로 했다. 국제기구로 재탄생하면 한국과 ‘녹색동맹’을 맺은 덴마크의 라르스 뢰케 라스무센 전 총리가 무급 명예직인 이사장을 맡기로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14일 “GGGI에 동참한 나라들의 목표는 저개발국이 저탄소 녹색성장 모델을 찾도록 하는 일”이라며 “그 일을 한국이 제시한 모델에 동의해 자국 예산을 써 가며 참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GGGI는 앞으로 개도국의 녹색성장 전략을 수립해 주고 그 이행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게 된다. 이미 캄보디아 베트남 태국 에티오피아 등 11개국에 지역별 저탄소 발전전략과 수자원 개발계획, 온실가스 감축전략 등을 짜주고 있다. 신부남 외교부 녹색성장대사는 “GGGI는 8개국 외에 민간기구와 전문가도 참여하는 ‘민관혼합형’ 기구로 운영될 예정”이라며 “현재 60명 정도인 인력이 2년 뒤 160명까지 늘어나는 등 국내외 환경 전문가들에게 고급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회도 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GGGI의 앞날을 낙관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도 들린다. 녹색성장은 한국의 국가 비전이지만 워낙 ‘MB 색채’가 강한 데다 뚜렷한 성과를 내는 데는 상당한 시간과 인내심이 필요하다. 따라서 이 대통령과 참가국 정상들이 퇴임한 후 계속 추진 동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견해도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