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섭 교수 “애국가가 독재 정권때?…알지도 못하면서”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6월 18일 23시 40분


한인섭 서울대 법대교수가 '애국가는 독재정권에서 만들어져 국가(國歌)가 아니다'라는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한 교수는 18일 트위터를 통해 "애국가 가사는 구한말에 만들어졌고, 독립운동과정에서 좌우 불문하고 널리 불렸다. 작사는 안익태의 작곡보다 더 오랜 역사. 무슨 독재정권 때 애국가가 만들어져?"라며 이 의원의 무지를 지적했다. 한 교수는 또 "현재 애국가가 바람직하냐는 논쟁은 충분히 가능하다. 작사가 고리타분? 곡조가 지루? 안익태의 행적이? 등등. 새로운 창작으로 애국가와 경쟁도 가능. 그러나 유장한 역사성에 대해 알지도 못한 채 대책 없이 물타기용으로 꺼낼 것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1930년대 안익태가 애국가를 작곡하기 수십 년 전인 구한말에 이미 애국가가 만들어져 백수십년 동안 우리나라 독립 및 민주화투쟁 때마다 우리의 정신적 지주로서 애창돼 왔다"고 강조했다.

한 교수는 구체적인 사례도 들었다. 조선민족혁명당원 이상규가 일제경찰에게 "3·1절을 맞아 애국가 제창, 조선독립만세를 3창했다"고 진술했다고 소개했다. 특히 일제경찰이 "애국가의 내용은?"이라고 묻자 이상규는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나님이 보우하사.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라고 답했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한 교수는 1934년 의열단원에 대한 일제 경찰심문 과정에서도 애국가가 나온다고 했다. 당시 일제 경찰이 "조선애국가의 내용은 어떤 것인가"라고 묻자 의열단원은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존하세 /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존하세 / 라는 문구이다"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반(反)군사독재 투쟁과정에도 애국가는 민주항쟁의 정신적 지주였음을 강조했다. 한 교수에 따르면 1974년 9월28일 육본 비상군법회의에서 민청학련 재판을 받는 학생들은 엉터리재판에 하도 분개하여 비장한 음성으로 "동해물과 백두산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교도관들이 학생들의 입을 틀어막았지만 학생들은 계속 애국가를 부르려 하면서 법정은 아수라판이 됐다.

한 교수는 또 1987년 6.10 민주항쟁을 주도한 국민운동본부의 행동요강에는 "오후 6시 국기하강식을 기하여 전 국민은 애국가를 제창한다. 그 후 자동차는 경적 울리고, 국민들은 민주주의 만세삼창을 한다"라고 적시돼 있었다며 "민주항쟁은 애국가와 함께 했다"고 강조했다.

최영훈 기자 tao4@donga.com
이새샘기자 iamsam@donga.com

[채널A 영상] 이석기 “애국가는 국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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