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친박(친박근혜) 지도부가 25일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 일정(8월 20일)을 확정하면서 경선 룰 협상 시한을 다음 달 9일로 못 박자 비박(비박근혜) 진영은 격앙됐다. 아직까지 경선 룰 협상을 위한 논의기구조차 없는 상태에서 협상 시한부터 제시한 것은 또 다른 무시 전략이라는 판단에서다.
정몽준 전 대표는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총선 전에는 개혁한다, 기득권을 내려놓겠다고 하더니 국민 시선을 (런던) 올림픽에 돌려놓고 ‘그들만의 리그’를 하겠다니…. (친박 진영이) 힘이 있으니 탱크처럼 밀어붙이겠다는 것인지”라고 썼다. 비박 진영 관계자는 “도대체 어디서 누구와 경선 룰을 협상하겠다는 것이냐”며 “요즘 말로 멘붕(멘털 붕괴) 상태다”고 말했다.
비박 진영에선 “기댈 곳은 여론밖에 없다”는 분위기다. 한 비박 인사는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독주에 민심이 흔들리면 양 진영의 극적 타협도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는 역설적으로 비박 진영이 당장 내놓을 협상 카드가 없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정 전 대표와 김문수 경기도지사, 이재오 의원 등 비박 대선주자 3인은 이달 10일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를 도입하지 않으면 경선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하지만 바로 다음 날 친박 지도부는 이들이 요구한 경선 논의기구의 구성 대신 현 당헌·당규대로 경선 일정을 짤 경선관리위를 출범시켰다. 그때부터 비박 후보들로선 ‘정치적 수모’를 당한 셈이다.
그러나 이들의 진짜 수모는 ‘대항할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데 있다’는 말이 나온다. 경선 불참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수순이 돼 버렸다. 문제는 경선 불참 후 취할 수 있는 ‘정치적 행보’가 마땅치 않다는 데 있다.
김 지사 측은 “경선 불참을 선언한 뒤 도정으로 돌아가는 것 말고 다른 길이 뭐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정 전 대표 측도 “지금으로서는 경선 불참 뒤 행보를 구상한 게 없다”고 전했다.
그렇다고 탈당이란 극한 선택을 하기도 어렵다. 오픈프라이머리 도입의 필요성으로 개인적 이익이 아닌 보수진영의 승리를 내세운 만큼 보수진영의 분열을 의미하는 탈당 카드를 꺼내면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다. 탈당 뒤 규합할 제3세력도 마땅치 않다. 이 의원 측은 “이명박 대통령이 새누리당에 있는데, 대통령을 만든 세력이 먼저 탈당할 수 있겠느냐”며 “명분도 실리도 없다”고 말했다.
이런 진퇴양난의 상황은 비박 진영이 자초한 측면도 있다. 비박 후보 3인은 대선 출마 선언 후 두 달 가까이 전국을 누볐지만 1∼2%의 지지율은 좀처럼 오르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박근혜 대세론’에 힘을 실어준 꼴이 됐다는 것이다. 대선 출마 선언 뒤 여러 공약을 내놓기는 했지만 오픈프라이머리 도입 문제가 블랙홀처럼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도록 만든 점도 자충수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지사 측은 “이제 ‘고독한 결심’의 순간만 남았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측근은 “김 지사는 백기투항보다는 불출마를 선택할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이제 관심은 비박 주자 3인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경선 불참을 선언할지로 모아지는 분위기다. 비박 진영에선 세 후보가 나란히 카메라 앞에 서는 일은 없을 것으로 전망한다. 지금까지 각자 쌓아온 정치적 자산이 비박이란 이름 속에 묻히길 서로 원치 않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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