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위기를 거시경제의 상수(常數)로 받아들여야 한다. 긴 호흡으로 체질을 보강해야 한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28일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3.7%에서 3.3%로 낮추면서 현재 한국이 처한 경제 상황을 이렇게 밝혔다.
그는 유럽발 재정위기가 그리스 긴축안 재협상, 스페인 구제금융, 남유럽 국가 국채만기 도래 등으로 확산되고 있지만 이에 대한 확실한 해결 방안을 기대하기 어려운 만큼 긴 호흡으로 글로벌 위기 국면에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경제가 당분간 ‘질기고 오래 가는 위기’에 대응해 저성장 국면을 참고 견뎌야 한다는 의미다.
정부는 이날 발표한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 가계부채 탕감, 국채 발행을 통한 추가경정예산 편성 같은 선제적 공격적 정책 대신 재정투자 확대, 직불카드 소득공제 상향조정 같은 방어적 미시적 정책을 주로 담았다. 대통령 선거를 6개월 앞둔 시점에서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동원하기 어렵다는 현실론도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 길어지는 위기에 준(準)추경 편성
이날 정부는 총 8조5000억 원 규모의 재정투자 대책을 내놨다. 올해 경상 국내총생산(GDP)의 0.65%에 해당하는 돈이다. 주택구입·전세자금 지원에 1조2300억 원, 농산물 비축지원사업에 622억 원을 늘리는 등 기금 지출을 확대하고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을 중심으로 공공기관 및 민간자본 투자를 1조7000억 원 증액한다. 국회 동의가 필요 없는 범위 내에서 동원 가능한 재원을 모두 모은 사실상의 준(準)추경이다.
최상목 재정부 경제정책국장은 “중장기적 관점에서 재정 여력을 비축하기 위해 추경보다 여유 재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게 좋다고 판단했다”며 “재정 투자 확대가 하반기 경제성장률을 약 0.13%포인트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매월 대통령이 경제상황 점검 민관합동회의를 주재하며 비상대응 체제를 강화한다. 글로벌위기가 확산돼 외국인이 한국 국채를 한꺼번에 팔고 떠나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시장안정펀드 조성, 국제협력 강화 등도 검토된다.
가계부채 연착륙을 위해 현재 25%인 직불카드 소득공제율을 신용카드(20%)보다 10%포인트 높은 30%로 올리고, 은행의 장기·고정금리 대출을 촉진하고자 주택담보대출을 담보로 발행하는 ‘커버드 본드’를 법제화한다.
기업의 투자 확대를 통한 내수 살리기도 추진된다.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이 3조 원 규모의 설비투자펀드를 조성해 중소·중견기업의 자금난을 덜어주고, 외국인 투자 지원을 위한 원스톱 서비스 방안도 8월에 내놓는다. 2조 원 규모의 은행권 프로젝트파이낸싱(PF) 채권을 추가로 사들여 PF 정상화도 유도한다. 자금난에 시달리는 중소건설사의 숨통을 터주기 위해 3조 원가량의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P-CBO) 발행을 지원한다. ○ 위기 취약 서민 위한 대책 확대
경제위기 상시화로 어려움을 크게 겪을 서민을 위한 종합대책도 나왔다.
우선 주거비 지원을 위해 월세 등 임대료의 소득 공제폭을 현행 40% 수준에서 더 높이기로 했다. 무주택자에 대한 보금자리론의 지원금리도 최대 연 4.85%에서 4.2%까지 낮춘다. 급여가 5000만 원 이하인 근로자나 종합소득 3500만 원 이하인 자영업자가 10년 이상 장기펀드에 가입하면 소득공제 혜택을 주고, 저신용·저소득층에 대한 은행권 금융 지원을 확대하기 위한 방안도 마련한다.
2%대의 물가상승률이 지속되고 신규 취업자가 매월 40만 명을 넘어서는 등 고용, 물가 사정이 나아졌지만 정부는 고삐를 늦추지 않을 계획이다. 청년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공기관의 채용 규모를 당초 1만3800명에서 1만5300명으로 늘리고 군에서 전역하는 청년들에게 ‘취업 성공 패키지’ 등 취업상담 서비스를 제공한다. 고졸로 중소기업에 취업했다가 군에 입대해도 해당 중소기업에 세액 공제를 유지해 군 입대로 경력이 단절되는 것을 막도록 했다.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 후 경제활동을 이어 나가는 현실을 고려해 65세 이상에게는 지원을 중단했던 실업급여 수급자격 연령 제한도 완화하기로 했다. 물가 안정을 위한 알뜰주유소 연내 1000곳 설립, 서민생활 밀접품목 유통구조 개선 등 물가 대책도 이어갈 계획이다.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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