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자위권’ 명분으로 군사력 확장 - 우경화 ‘본심’ 드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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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7월 6일 03시 00분


日총리 직속 위원회 ‘집단적 자위권 행사 허용’ 보고서 파문

일본 총리 직속 프런티어 분과위원회가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용인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작성한 것은 그동안 일부 우익이 요구하거나 주장했던 것과는 의미가 다르다. 이에 반대했던 일본 정부의 입장 선회를 예고하는 데다 주변국의 반발을 고려해 주저해 왔던 태도를 수정하려는 것으로 일본의 우경화가 급격히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패배로 미군정의 지배를 받다 벗어난 후 ‘합법적인 무장력을 갖춘 보통 국가’를 희망해 왔다.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전 민주당 대표는 1993년 ‘보통 국가’란 단어를 처음 사용해 이 문제를 공론화했다. ‘군대 보유’와 ‘집단적 자위권’은 보통 국가를 이루는 두 개의 기둥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두 가지 모두 군대 보유와 교전을 부정한 일본 헌법 제9조와 충돌했다. 그러자 우익 정치인들은 “집단적 자위권은 일본 영토 방위의 연장선상에 해당한다. 헌법 9조가 금지하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의 무력행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헌법을 개정하지 않으면서도 보통 국가로 가는 길을 찾아보겠다는 계산이었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의 법제부는 헌법 9조를 엄격하게 적용해 “집단적 자위권을 갖고는 있지만 행사할 수는 없다”고 해석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부 내부 위원회가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를 주장해 정부 내에서 이견을 제시한 것이다.

지난해 10월 활동을 시작한 위원회에는 성장전략을 담당하는 ‘번영’, 사회보장 정책을 논의하는 ‘행복’, 인재육성이나 우주정책·과학기술 분야를 논의하는 ‘예지(叡智)’, 외교나 해양정책을 논의하는 ‘평화’ 등 4개의 소위원회가 있다. 집단적 자위권 논의는 평화 소위원회에서 거론된 뒤 위원회 차원에서 정리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일본 정부 내부에서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져 가는 것을 묵인하는 분위기다. 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은 일본이 군사력을 강화해 유사시 전쟁에도 나서 주기를 내심 바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동맹관계인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는 데 반대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유사시 자위대의 한반도 주둔 근거로 삼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집단적 자위권은 동맹국가들 사이에 적용되는데, 한국과 일본은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 동맹관계가 아니다. 만일 일본의 동맹국인 미국이 주한미군의 안전을 위해 일본 자위대의 한국 파병을 요청하더라도 영토주권을 가진 한국의 국회가 이를 승인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이런 맥락에서 집단적 자위권 주장은 국내용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장기 불황, 북한의 핵무장, 중국의 급격한 부상, 대지진, 이웃 국가와의 영토분쟁 등 국내외의 악재가 쌓이자 우경화를 통해 국민의 시선을 돌려보자는 것이다.

문제는 일본의 우경화 경향이 점차 더 강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기존 정치권뿐만 아니라 대중적 인기가 높은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오사카 시장과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 도지사도 집단적 자위권에 찬성한다.

자민당은 소비세(부가가치세) 증세 이후 중의원이 해산될 것으로 보고 총선 준비를 하고 있다. 올해 4월 만든 선거 공약에는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를 인정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르면 9월에 실시될 것으로 보이는 총선에서 자민당이 다시 여당으로 돌아가면 이런 우경화 경향은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당장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를 인정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히라이와 슌지(平巖俊司) 간세이가쿠인(關西學院)대 교수는 “전쟁에 반대하는 국민과 시민단체가 많고 평화헌법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기 때문에 정부 위원회가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를 건의했다고 해서 당장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한일 정보보호협정의 ‘밀실 처리’ 파문이 이어지는 민감한 시기에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주장하고 나온 데 대해 내심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한 외교부 당국자는 “일본 정부가 보고서의 제안을 그대로 받아들일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면서도 “한일 정보보호협정 체결을 재추진하는 것은 어려워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중국 정부나 관영 언론 등은 이날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추진에 특별한 반응을 나타내지 않았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배극인 특파원 bae2150@donga.com  
#자위권#동북아 정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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