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성 무시한 ‘상임위장 나눠먹기’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7월 7일 03시 00분


외통위 경험 전무한 의사출신이 외통위장…
‘교과위 터줏대감’ 재료공학자가 정보위장…
19대국회 시작부터 졸속

“외교통상부를 대대적으로 수술하기 위해 투입된 모양이다.”

“이제 침대가 과학이 아니라 정보가 과학이다.”

19대 국회 전반기 외교통상통일위원장에 내정된 새누리당 안홍준 의원과 정보위원장에 내정된 같은 당 서상기 의원을 두고 정치권에서 나오는 ‘뼈 있는 농담’이다. 안 의원은 산부인과 의사 출신, 서 의원은 재료공학 박사로 한국기계연구원장을 지냈다.

안 의원은 지금까지 자신의 전문성을 살려 국회 보건복지위나 환경노동위 간사 등을 맡았다. 외통위 경험은 전혀 없다. 현역 국회의원 중 몇 안 되는 과학자 출신인 서 의원도 주로 교육과학기술위에서 활동했다. 정보위에 소속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상임위원장 ‘졸속 배정’의 대표적 사례다.

민주통합당도 다를 바 없다. 정무위 국방위 간사 등을 지내며 전문성을 인정받은 신학용 의원은 당초 보건복지위원장으로 거론되다 막판에 교육과학기술위원장으로 확정됐다. 교과위 경험이 전혀 없지만 당내 ‘돌려 막기’로 인해 엉뚱한 상임위원장을 맡게 된 셈이다. 당내에선 “신 의원이 손학규 상임고문 계파라는 이유로 상임위원장 배정에서 제외됐다가 뒤늦게 자리를 얻으면서 빚어진 결과”라고 말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으로 내정된 민주당 오제세 의원도 복지위 경험이 전무한 ‘초짜 위원장’이다. 새누리당 김태환 의원은 국토해양위원장을 노리다 해당 상임위원장이 야당 몫이 되는 바람에 상임위 경험이 없는 행정안전위원장을 맡게 됐다. 애초 행정안전위원장에는 같은 당 정두언 의원이 유력했지만 저축은행 비리에 연루되면서 제외됐다.
▼ 지역-나이 따져서… 전리품처럼 나눠가진 국회 상임위원장 ▼

초짜 상임위원장이 즐비한 것은 여야 모두 상임위원장 배정 때 전문성보다는 선수(選數)와 지역, 계파, 나이 등을 먼저 고려하기 때문이다.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6일 의원총회에서 공개적으로 “상임위원장 선정 시 지역별로 확실히 안배하고 연장자를 우대했다”고 밝혔다.

새누리당 소속 상임위원장 10명 가운데 대구 출신이 3명, 경북과 경남 출신이 각각 2명, 부산 울산 경기 출신이 1명씩이다. 민주당은 서울 출신 2명, 인천 경기 충북 전북 전남 제주 출신이 1명씩이다. 두 당 모두 지역 안배를 가장 신경 썼다는 얘기다.

이는 상임위원장을 ‘감투’로 여기는 풍토 때문이다. 상임위원장이 되면 매달 수백만 원에서 1000만 원에 이르는 활동비와 수당을 받는다. 해당 부처에서는 장관급 예우를 받는다. 자연히 지역구 예산을 따내기도 쉽다. 정치권에선 “언제 잘릴지 모르는 장관보다 임기(2년)가 보장된 상임위원장이 낫다”는 말까지 나온다.

더욱이 정치권에선 3선 의원이 상임위원장을 맡는 게 관행처럼 돼 있다. 3선 의원들이 상임위원장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이유다. 민주당이 이번 원 구성 협상 당시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를 문화체육관광위와 방송통신위로 쪼개자고 제안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상임위원장 자리를 하나라도 더 만들어 내부의 과열경쟁을 막기 위해서였다. 민주당에는 3선이 27명이나 돼 이들 중 11명은 상임위원장을 맡기 힘든 상황이다. 야당 몫 상임위원장이 8석으로 국회 전·후반기를 통틀어 16명만이 상임위원장을 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온갖 사안에 각종 특위를 만들자고 제안하는 데는 이런 배경도 깔려 있다. 상임위원장을 맡지 못한 3선 의원들에게 특위 위원장이라도 주기 위해서다.

“1년이라도 위원장을 맡겠다”며 3선 의원들 사이에 아귀다툼이 벌어지면 재·보궐선거로 국회에 들어온 이른바 ‘2.5선 의원’들은 명함도 내밀기 힘들다.

자연히 의회 전문성이 발휘되기 힘든 구조다. 정치권은 국회 개혁을 얘기할 때마다 상임위 중심의 국회를 만들겠다고 공언해왔다. 상임위에서 여야가 충분히 협의하고 타협점을 찾아야 본회의에서의 여야 간 정면충돌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임위원장조차 전문성이 없는 상황에서 상임위 중심 국회는 ‘남의 나라 얘기’일 뿐이다.

상임위원장 배정이 주먹구구식이다 보니 상임위원 배정에서도 전문성을 찾기 힘들다. 통일 분야 전문가라며 비례대표로 영입된 민주당 임수경 의원은 외통위가 아닌 행안위에 배정됐다. 임 의원 자신도 외통위 대신 문방위를 1순위로 지망했다고 한다. 민주당 관계자는 “임 의원이 문방위에서 불교계를 대변하길 원했던 것 같다”며 “행안위에 배정되자 임 의원이 눈물을 보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불자인 임 의원은 2005년 아들을 사고로 잃은 뒤 해인사에 2년 정도 머문 것으로 알려졌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는 “상임위가 전문성을 잃으면 행정부 견제 기능이 사라져 행정부 독주시대가 온다”며 “상임위나 국회가 거수기로 전락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김지혜 인턴기자 이화여대 독어독문학과 졸업  
#19대국회#상임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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