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과 무소속 박주선 의원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 국회 본회의장. ‘정두언 부결, 박주선 가결’로 결론이 나자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 등 원내지도부의 표정이 굳어졌다. 반면 민주통합당 의원들 사이에선 묘한 미소가 흘렀다. 정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은 18대 대선을 앞두고 여야가 ‘특권 내려놓기’ 경쟁을 벌여온 상황에서 새누리당엔 자칫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야당이 일제히 ‘제 식구 감싸기’라고 비판하고 나선 것도, 새누리당 원내지도부가 총사퇴의 초강수를 들고 나온 것도 그런 이유다.
○ 새누리당 동료애와 민주당 역선택?
이상 기류는 이날 오전부터 감지됐다. 새누리당 원내 핵심 관계자는 “큰일이다. (정 의원이) 제 발로 영장실질심사를 받으러 가겠다는데도 체포동의안을 처리해 죽이겠다고 하는 데 대한 반감이 크다”고 말했다.
본회의 직전 열린 의원총회에선 ‘반란’이 일어났다. 이 원내대표가 “동료 의원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보다는 국민의 법감정과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가치를 우선해야 될 시점”이라며 “변화와 쇄신의 길로 가겠다는 국민과의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김용태 의원은 “한 개인의 생사가 달려 있는 일인데 당론으로 몰아가는 행태를 단호하게 반대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비공개 의총에서도 김성태 윤상현 의원 등의 반대 의견이 이어졌고 남경필 의원도 본회의에서 반대발언을 했다. 새누리당 일부 의원들은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이날 표결은 무기명 비밀투표로 국회의원 281명(271명 투표)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이 중 새누리당 의원은 137명(민주당 120명, 비교섭단체 24명)이었다. 정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 투표함에선 197장의 사실상 반대표(반대 156표, 기권 31표, 무효 10표)가 나왔다. 새누리당 참석 의원 전원이 반대표를 던졌다고 해도 민주당과 통합진보당, 무소속에서 60명이 정 의원 체포동의안에 찬성하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표결에 앞서 체포동의안 찬성을 위한 표 단속에 들어갔다. 새누리당 의원 중 절반가량이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가정하면 120∼130명의 야당 의원이 무소속 박주선 의원의 체포동의안엔 대체로 찬성한 반면 정 의원의 체포동의안에는 찬성하지 않은 전략적 ‘역선택’이 있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이날 새누리당에선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본회의장에서 손을 들고 투표 지휘를 하더라”면서 “저축은행 관련 수사를 받고 있는 자신의 체포동의안 문제를 고려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무소속 의원만 체포되고 여당 의원만 살아남는다면 민주당이 박 원내대표 수사에 대해 만든 ‘야당 탄압’ 프레임이 공고화되고 ‘특권 포기’ 드라이브를 걸어온 새누리당을 곤혹스럽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 “어, 원내지도부 총사퇴까지?”
정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부결되자마자 이 원내대표는 김기현 수석부대표 등 부대표단을 방으로 불러들여 사퇴의 뜻을 밝혔다. 서병수 사무총장이 급하게 원내대표실을 찾았고 이 원내대표와 황우여 대표 간의 몇 차례 전화연결이 이어졌다. 결국 본회의 표결이 끝난 뒤 불과 40여 분 만에 이 원내대표의 사퇴 기자회견이 열렸다.
새누리당으로선 ‘특권 내려놓기와 쇄신으로 국민 신뢰 얻기’라는 대선 전략에 상당한 지장이 생겼다. 이에 자신이 책임을 지고 사퇴함으로써 당이 직접 입게 될 충격을 완화하려 했다는 것. 이 원내대표는 자신의 전격적인 사퇴가 총선 승리 이후 정신적인 나태함에 빠진 당에 충격요법이 되기를 기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사퇴 기자회견에서 “앞으로도 국회 쇄신은 중단 없이 지속돼야 하고 향후 유사 사례가 없기를 바란다”고 했다. 국회 특권 포기와 쇄신의 주도권을 잃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황 대표는 이날 오후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이 원내대표의 사퇴 문제를 논의한 뒤 “사퇴를 철회해 달라”는 뜻을 이 원내대표에게 전하기로 했다. 또 13일 의원총회를 열어 사퇴 철회 쪽으로 의견을 모으기로 했다.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도 “원내대표가 책임질 일 이 아니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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