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초 大勝에 취해 자만했던 결과…” 원조 MB맨들의 한숨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7월 17일 03시 00분


■ 이상득-김희중 비리 의혹에 靑초기 보좌진 ‘만시지탄’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지라고 만든 정권은 아닌데….”

이상득 전 의원, 김희중 대통령제1부속실장 등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들이 저축은행 게이트에 잇달아 휘말리는 모습을 복잡한 심정으로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과 함께 이명박 정권을 만들었지만 지금은 한 발짝 떨어져 있는 ‘원조 MB맨’들이다. 대선을 거쳐 주로 2008∼2009년 청와대에서 일했던 최측근 인사들은 요즘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초대 대통령국정기획수석비서관으로 ‘MB 노믹스’의 설계자 중 한 명인 곽승준 대통령미래기획위원장(사진)은 최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최근 상황에 대해 “나도 황망하다. 이런 모습을 보려고 만든 정권은 아니지 않으냐”며 “상황이 이렇게까지 될 줄은 정말 몰랐다”고 답답해했다. 그는 “돌이켜보면 대선 다음 날부터 조심했어야 했는데 530만 표 차의 대승에 취해 너무 자만했던 것 같다”며 “스스로 더 엄격했어야 했는데 측근들이 ‘남이 하면 스캔들, 자신이 하면 로맨스’라는 생각에서 별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고도 했다.

경선 캠프를 거쳐 임기 초 청와대 핵심 보직에서 선임행정관(2급)을 지낸 A 씨는 16일 새벽 기자에게 저축은행 게이트와 관련해 장문의 e메일을 보냈다. 그는 김 실장과는 연배도 비슷해 가깝게 지내던 사이였다.

A 씨는 “연일 터지는 BH(청와대) 금품 수수 보도에 처참한 심정이다. 어떻게 대통령을 모시면서 돈의 유혹에 그렇게 쉽게 무너져 버릴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탄식했다. 이어 “BH에서 일한다는 사실 자체를 돈보다 가치 있고 영예롭게 생각해야 하는데, (이들과) 같이 근무했던 사람으로서 가슴이 무너지고 답답하다”며 “경제위기를 극복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비리 의혹으로 정권이 흔들리는 것을 보며 넋두리를 할 수밖에 없다. 나만이라도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야겠다”고 덧붙였다.

역시 임기 초 대통령비서관을 지낸 B 씨는 최근의 저축은행 게이트에 대해 “MB 청와대가 너무 일 중심으로 운용되다 보니 이런 결과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경제 살리기도 좋지만 국정 운영은 역시 공공의 영역이라는 점을 인식했어야 했는데 그런 사람이 많지 않았다”며 “임기 초에 도덕 재무장 운동이라도 했어야 했다. 그 점이 참 뼈아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16일 김 실장의 사의를 수용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별다른 언급은 하지 않았다고 박정하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형님의 구속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한 관계자는 “15년간 자신을 보좌한 최측근의 비리 연루에 이 대통령이 누구보다 착잡하겠지만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특별한 언급을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청와대도 사표가 수리된 만큼 김 실장에 대해 추가 조사를 벌이지 않을 계획이다. 청와대가 이미 물러난 김 실장을 불러 조사할 경우 오히려 김 실장에게 법률적 힌트를 제공하거나 검찰에 가이드라인을 준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이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여부에 대해서는 갈수록 ‘해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아직 사과를 검토하고 있지 않다”(박 대변인)는 게 청와대의 공식 태도지만 한 핵심 관계자는 “그냥 지나치고 넘어갈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참모들 사이에서도 친인척 및 측근 비리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유감 표명은 필요하다는 게 다수의 의견이다. 사과의 시기, 수위 등을 결정하는 일만 남은 셈이다.

대국민 사과 시기는 이달 말이나 다음 달 초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검찰의 저축은행 수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만큼 좀 더 기다리자는 의견도 있지만 “너무 늦어지면 실기한다”는 주장이 더 많다.

사과 수위는 형님과 최측근이 연루된 만큼 이전보다 강해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이 대통령은 2월 22일 취임 4주년 특별회견에서 측근 비리 의혹과 내곡동 사저 터 논란과 관련해 “내 주위에 비리를 저지른 사람이 나올 때마다 정말 가슴이 꽉 막힌다. 국민께 할 말이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사과 방식은 대국민 담화가 적절하다는 의견이 많다. 기자회견은 다른 이슈가 끼어들어 사과의 뜻을 전달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게 청와대 내부 의견이다.

[채널A 영상]단독/“저축은행 뒷돈 받은 청와대 인사 또 있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MB맨#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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