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판 흔드는 ‘엔터테인 정치’]‘예능 대선’… 허허 웃다 虛虛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7월 24일 03시 00분


23일 SBS TV 예능 토크쇼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 출연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새누리당 박근혜 의원, 민주통합당 문재인 의원도 올 1월 같은 방송에 잇따라 출연했다(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SBS 방송화면 캡처
23일 SBS TV 예능 토크쇼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 출연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새누리당 박근혜 의원, 민주통합당 문재인 의원도 올 1월 같은 방송에 잇따라 출연했다(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SBS 방송화면 캡처
“2012년 대선은 정책 경쟁이 사라진 ‘엔터테인먼트 대선’으로 흐를 것인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SBS TV 예능 토크쇼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 출연이 세간의 주목을 받은 23일, 같은 날 방송된 민주통합당의 대선 경선후보 합동토론회가 별다른 주목을 끌지 못하자 정치권에선 이 같은 자조가 나왔다. 미디어를 통한 선거운동의 속성상 정치인의 이미지가 부각되는 건 자연스럽지만 정책공약 발표가 외면당하고 예능 프로그램을 통한 이미지 마케팅만 주목받는 건 본말이 전도됐다는 것.

미디어를 통한 선거운동, 또는 미디어정치는 ‘텔레비전’과 ‘민주주의(데모크라시)’의 합성어인 ‘텔레크라시’로 불린다. 텔레크라시의 효시는 1960년 존 F 케네디와 리처드 닉슨 후보의 TV 토론이다. 한국에선 1997년 대선 당시 후보들의 TV 토론이 처음 도입됐고 국민들은 안방에서 후보들을 검증하는 혁명적 변화를 경험했다.

하지만 올해 한국 정치의 텔레크라시는 대선주자들의 이미지를 팔기 위한 수단의 성격이 강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선주자들은 집권 비전보다 인생 역정을 강조한다. 인간적 면모를 부각하기 위해 TV 카메라 앞에서 예능과 코미디 연기를 불사한다.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 문재인 민주당 의원도 올해 1월 잇따라 힐링캠프에 출연했다. 박 의원 측의 홍사덕 공동선대본부장이 안 원장의 힐링캠프 출연을 비난했지만 박 의원도 힐링캠프를 이미지 마케팅에 이용했다는 점에서 할 말이 없다. 문 의원의 담박한 이미지는 힐링캠프 출연으로 대중에게 각인됐다.

문 의원은 대선출마를 선언하자마자 ‘이미지 캠페인’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출마 선언 당일인 지난달 17일 저녁 스피치콘서트에 부인, 아들과 함께 출연해 따뜻한 가장의 이미지를 알리는 데 주력했다. 특전사 출신임을 강조하며 군복을 입고 ‘특전사 마라톤’에 참여하기도 했다. 대통령상(PI·Presidential Identity)으로 ‘대한민국 남자’를 정했다가 남성중심적 사고라는 비판을 받아 폐기한 것도 이미지 캠페인의 부작용이라는 지적이 많다.

손학규 민주당 상임고문,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도 힐링캠프 출연을 원했으나 거절당했다. 김 전 지사 측은 기존 광고를 패러디해 자신을 등장시키는 방안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세균 상임고문은 최근 케이블채널 tvN의 예능 프로그램 ‘SNL 코리아’에 출연해 코미디 연기를 했고 40, 50대 주부를 겨냥한 아침 프로그램 출연도 검토했다.

민주당의 대선캠프 관계자들은 “정책 경쟁이 중요하다”면서도 “어차피 대선은 이미지로 승부가 난다”는 속내를 감추지 않는다. 대선을 불과 2개월 남겨 놓은 10월경 야권의 단일후보가 결정될 수도 있는 상황이 후보자 검증을 가로막고 이미지 마케팅에 몰두하게 하는 원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기성 정치가 신뢰를 주지 못하자 국민들이 정치인의 메시지나 후보자가 갖춰야 할 조건에 무관심해졌고 예능으로 포장된 이미지에만 관심을 갖는다는 분석도 나온다. 무엇보다 정치인의 예능 프로그램 출연 여부가 방송사의 상업주의나 시청률 지상주의에 좌우될 수 있다는 점은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민주당 관계자는 “힐링캠프에 안 원장이 나온 건 높은 시청률을 확보할 수 있다는 방송사의 계산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며 “시청률 때문에 정치인의 출연 여부가 결정되고 이를 통해 지지율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면 불공정한 게임이 된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되면 ‘유권자의 알 권리 충족을 통한 정치인 검증’이라는 미디어 정치 본연의 목적과도 멀어지게 된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미디어 정치의 확대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정치·정책 능력이 검증된 대선주자에게 플러스 요소가 되는 정도여야지 인지도를 단번에 높이거나 이미지를 팔기 위한 한탕주의의 수단이 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안철수#예능 대선#힐링캠프#박근혜#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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