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의 잠재적 대선주자로 꼽히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책+토크쇼 바람’이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다. 사실상 대선공약을 담은 것으로 평가되는 대담집 ‘안철수의 생각’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고, 여기에 예능 토크쇼 출연까지 더해지면서 정치권의 지각변동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민주통합당은 ‘안풍(安風)’에 포위된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주당은 23일 예비경선 방송합동토론을 시작으로 대선후보 경선 대장정을 시작했지만 초반부터 안 원장에게 밀려 존재감을 찾기 힘든 상황이 됐다.
민주당 대선주자 중 가장 지지율이 높은 문재인 의원의 책 ‘운명’은 지난해 6월 출간 이후 현재까지 약 23만 부가 팔렸다. 반면 안 원장의 책은 판매 첫날인 19일 교보문고의 출간 첫날 최고기록을 경신했으며, 23일까지 약 15만 부가 팔린 것으로 추산된다. 이런 속도라면 이번 주 안에 ‘운명’의 전체 판매량을 추월할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 대선주자들도 앞다퉈 위기감을 토로하고 있다. 김영환 의원은 이날 언론 인터뷰에서 민주당이 안 원장을 영입하는 문제에 대해 “민주당 입장에서 처절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정길 전 행정자치부 장관은 “민주당 경선이 마이너리그가 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새누리당도 안 원장의 급부상에 긴장하는 기색이다. 박근혜 의원은 지난해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몰아친 ‘안풍’에 대세론이 주춤했던 경험을 갖고 있다.
안 원장의 책 판매와 방송 출연은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한동안 정치판을 뒤흔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안 원장이 출연한 SBS TV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는 이미 대선주자인 박 의원과 문 의원의 출연으로 파급효과를 입증했다. 특히 1월 힐링캠프에 출연했던 문 의원의 경우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 기준으로 출연 직전 8.9%였던 지지율이 출연 직후 14.6%로 급등한 바 있다.
박 의원이 출연한 1월 2일분의 시청률은 전국 기준 12.2%(AGB닐슨미디어리서치)였으며, 문 의원의 1월 9일분은 10.5%였다. 안 원장이 출연한 힐링캠프는 서울 기준으로 초반 5분 시청률이 16.1%를 기록해 상당한 파급 효과가 예상된다. AGB닐슨 관계자는 “초반 시청률 기준으로 해당 프로그램 평균 대비 2∼4%포인트 상승한 수치”라고 말했다.
안 원장은 23일 토크쇼에서 대선출마에 대한 고민을 묻는 질문에 “나를 지지하는 사람들 생각이 뭘까, 제 생각이 그분들의 기대 수준과 맞는가, 내가 능력과 자격이 있는가를 고민했다”고 답했다. ‘대선출마를 국민이 원할 경우에는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가능성을 열어놓고 국민의 판단을 받겠다”고 밝혔으며, ‘언제 결론을 낼 것이냐’고 묻자 “조만간 결론을 내려야겠죠”라고 밝혀 최종 결심이 임박했음을 시사했다.
또 자신의 주식 절반을 사회에 기부한 것에 대해 “원래는 작년 9월에 기부하려 했으나 시기가 서울시장 선거 때와 겹쳐 오해를 피하기 위해 서울시장 선거 후로 택했다”며 “정치에 나가더라도 재단과 정치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토크쇼에서 그는 지금의 부인과 군 시절 주고받은 연애편지를 공개하고 집에서 부인을 위해 모닝커피를 타는 모습을 보이는 등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하는 데 주력했다. 자신을 ‘정치인’으로 여기는 데 대해선 “저는 숨은 의도를 갖고 말한 적이 없다. 의도가 있으면 의도도 말하는데, 기존 정치인들이 에둘러서 말하는 경향이 있다 보니 언론에서 숨은 의도를 상상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안 원장은 특전사 시절 사진을 공개한 문 의원을 의식한 듯 해군 군의관 시절 사진을 공개했으며, 작년 10월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할 생각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10% 정도 고민을 했다”고 털어놨다. ‘우유부단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경영자로서 사업하는 사람은 우유부단하면 성공할 수 없다. 제 삶과 거리가 있는 표현”이라고 일축했다.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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