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의 공천헌금 의혹이 불거진 2일 밤 친박근혜계 핵심인사들이 긴급 회동했다. 이 자리에는 현영희 의원에게서 비례대표 공천 명목으로 3억 원을 받은 혐의로 검찰에 고발된 현기환 전 의원도 참석했다. 현 전 의원은 억울함을 토로했지만 사태의 심각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공천 과정에 부정이 개입된 흔적이 조금만 드러나도 박근혜 의원은 치명상을 입기 때문이다.
3일 열릴 긴급 최고위원회의에서 현 의원과 현 전 의원을 출당 조치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은 이 때문이다. 두 사람에게 검찰에 자진 출석해 조사를 받으라는 얘기다. 비례대표 의원은 탈당하면 의원직을 잃지만 출당되면 유지할 수 있다.
정치권에서는 현 의원 외에 새누리당의 또 다른 비례대표 의원도 공천헌금을 준 의혹이 있다는 얘기가 도는 등 공천헌금 파문이 점점 확산되고 있다.
○ 공천헌금 실체 드러날까
현 의원은 2월 부산 중-동 지역구에 공천을 신청했으나 낙천했다. 이어 3월 중순경 공직후보자추천위원인 현 전 의원에게 비례대표 후보 공천을 부탁하며 3억 원을 건넸다는 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고발 내용이다. 새누리당 공천위는 20일 비례대표 후보를 발표하면서 현 의원을 23번에 배정했다. 새누리당은 정당득표에 따라 비례대표 후보 25번까지 당선됐다. 현 의원은 3월 말 홍준표 전 대표에게 2000만 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건넨 혐의도 받고 있다.
선관위는 현 의원이 조모 씨를 통해 현 전 의원과 홍 전 대표에게 돈을 전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조 씨는 새누리당 부산시당 전 홍보위원장과 홍 전 대표의 특보 등으로 활동했다. 지난해 7월 당대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에서 조 씨와 현 의원은 함께 홍 전 대표를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현 의원은 부산시의원을 두 차례 지냈다. 2010년에는 부산시교육감 선거에 출마해 15.5%의 득표율을 올렸으나 3등에 그쳤다. 선관위에 신고한 재산은 181억5200만 원으로 비례대표 당선자 중 재산 순위 1위였다. 현 전 의원은 “부산에서 어지간한 분이면 (현 의원을) 안다”고 말했다.
○ 박근혜 의원 타격 입나
공천헌금 파문은 2일 충남 천안시에서 열린 새누리당 대통령후보 경선 합동연설회에서도 도마에 올랐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연설에서 “새누리당에 공천헌금을 줬다고 한다. 박 의원은 책임지고 우리 당이 먼저 조사해서 밝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총선에 앞서 개혁공천을 누차 강조한 박 의원을 정면으로 겨냥한 것이다.
비박(비박근혜) 대선주자 4명은 이날 “(공천헌금 파문은) 국민의 신뢰를 송두리째 흔드는 일”이라며 “하루빨리 당 지도부와 경선 후보들이 모여 연석회의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의 핵심 관계자는 “경선 후보들이 모여 회의를 한들 무슨 실익이 있겠느냐”며 연석회의 개최에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박 의원은 연설회가 끝난 뒤 기자들을 만나 “검찰에서 한 점 의혹 없이 밝혀야 될 문제”라며 “(당사자들의) 말이 서로 어긋나니까 검찰에서 확실하게 의혹 없이 밝혀야 된다”고 말했다. 이날 저녁 박 의원은 3일 열릴 TV토론회를 준비하며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참모들과 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관위 관계자는 “신고자가 5월 중순경 증거자료를 제출했다”며 “지난 두 달간 금품수수 일시, 장소와 관련자들의 통신자료를 비교해 본 결과 정확히 일치했다. 관련자들의 금융자료도 확인해 분석했다”고 말했다. 신고 내용의 신빙성을 선관위 나름대로 검증했다는 얘기다. 이 관계자는 “다만 증거 인멸을 막기 위해 관련자들을 직접 불러 조사하지는 않은 채 검찰로 넘겼다”고 덧붙였다.
○ 당사자들은 모두 ‘사실무근’
이 사건의 신고자는 현 의원의 과거 수행비서인 정모 씨로 알려졌다. 현 의원은 해명 자료에서 “정 씨는 (내가) 총선 예비후보일 때 수행업무를 도운 사람으로 선거 이후 4급 보좌관직을 요구했으나 이를 거절하자 나와 가족을 협박했다”고 주장했다. 앙심을 품은 음해라는 얘기다. 현 의원은 이어 “허위사실로 저의 명예를 훼손한 정 씨를 무고로 고소하겠다”며 “검찰 조사에도 즉시 자진 출석해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현 전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어 “(공천헌금 수수는) 전혀 사실이 아니며 명명백백하게 진실을 밝히기 위해 내가 먼저 (검찰) 조사를 받고 싶다”고 말했다. 홍 전 대표는 “내가 공천이 되느냐, 안 되느냐 할 때인데 무슨 공천헌금이냐. 이런 일에 (내가) 거론된다는 것 자체가 불쾌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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