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등지고 孫 들어준 민평련 뒤엔 ‘盧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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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8월 4일 03시 00분


민주통합당 문재인 의원과 손학규 상임고문이 각각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근태 전 의원의 ‘정치적 유산’을 이어받아 10년 만의 리턴 매치를 벌이고 있다. 김 전 의원을 지지하던 전현직 의원들 모임인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가 최근 실시한 지지후보 투표에서 손 고문이 1위를 차지하자 정치권에선 새삼 이 4명의 인연이 화제다.

○ 손학규의 눈물 “근태야 고마워”

손 고문은 1일 새벽 경기 남양주시 모란공원에 있는 김 전 의원의 묘소를 홀로 참배했다. 전날 민평련 투표에서 예상 밖의 1위를 차지하자 가장 먼저 친구를 찾은 것. 그는 묘소에서 “근태야 고마워”라며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는 후문이다.

손 고문으로서는 민평련 1위의 의미가 남다르다. 친노(친노무현)에 버금가는 당내 계파인 민평련의 지지를 얻었다는 건 문 의원 대세론을 흔들 단초를 마련했다는 의미다. 무엇보다 당내 정통성이 있는 민평련이라면 손 고문을 짓눌렀던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주홍글씨를 지워줄 수도 있다.

민평련의 손 고문 돕기도 가시화되고 있다. 민평련 관계자는 “공식 지지 요건인 3분의 2 득표에는 못 미쳤지만, 민평련 차원에서 소속 의원들을 손 캠프로 파견하자는 얘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손 고문은 민평련의 최종 투표에서 43표 중 찬성 30표, 반대 6표, 기권 7표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손 캠프에 파견될 의원으로는 우원식 원내대변인과 설훈 의원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우 대변인은 ‘좌인영 우원식’이라 불릴 정도로 이인영 의원과 함께 김근태계의 핵심 인물이다. 경남 출신의 3선 의원인 설 의원은 손 고문의 경남 공략에 힘을 보탤 것으로 보인다.

문 의원은 비록 민평련을 품지는 못했지만 민평련의 주요 인사 일부를 캠프로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민평련 사무총장 노영민 의원이 캠프 공동선대본부장에 이름을 올렸고 신계륜 이목희 의원도 개인 자격으로 참여한다.

○ 노무현-문재인 vs 김근태-손학규

민평련의 선택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 전 의원의 애증 관계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분석이 많다. 김 전 의원의 유지를 이어받은 민평련이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동반자인 문 의원을 지지하기 어려웠다는 것.

한때 “우리에게 김대중, 김영삼 같은 분열은 없다”며 단합을 과시했던 노 전 대통령과 김 전 의원은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 때 치열한 경쟁을 거치면서 골이 깊어지기 시작했다. 참여정부 때도 ‘말을 돌리지 않는’ 노 전 대통령과 ‘할 말은 하는’ 김 전 의원은 사사건건 부딪쳤다. 김 전 의원은 2004년 노 전 대통령이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에 제동을 걸자 “계급장 떼고 논쟁하자”며 맞서기도 했다.

문 의원과 노 전 대통령, 손 고문과 김 전 의원은 모두 친구이자 동지였다.

생전의 노 전 대통령은 문 의원을 두고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라고 자신을 소개했을 만큼 두터운 친분을 자랑했다. 손 고문은 서울대 정치학과 재학 시절 김 전 의원, 고 조영래 인권변호사와 함께 ‘경기고 출신 서울대 65학번 3인방’으로 불릴 만큼 가까운 사이였다.

민주당 관계자는 3일 “이번 경선은 각각 노 전 대통령과 김 전 의원의 정치적 유산을 물려받은 문 의원과 손 고문이 다시 맞붙는 2002년 새천년민주당 경선의 시즌2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문재인-손학규#김근태#민평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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