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헌금 파문으로 대선 경선 자체가 파국의 위기를 맞았던 새누리당이 5일 5인의 경선 후보 간 전격 합의가 이뤄지며 일단 고비를 넘겼다. 하지만 박근혜 의원과 비박(비박근혜) 후보들 간에 불신의 골은 오히려 깊어졌다는 분석도 있어 공천헌금에 대한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내분 사태는 언제든 재연될 소지가 크다.
새누리당은 이날 오후 6시 김문수 김태호 박근혜 안상수 임태희 경선 후보와 황우여 대표, 김수한 경선관리위원장이 참여한 7인 연석회의를 열었다. 당내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경선 후보들이 직접 만난 것은 처음이다. 이 자리에서 경선 후보들은 △공천헌금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 황 대표가 책임진다 △각 후보가 추천한 1인을 포함해 10명 이내로 (공천헌금)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한다는 2가지 항에 합의했다. 3일 저녁부터 경선 일정을 보이콧해온 김문수 김태호 임태희 등 비박 후보 3인은 6일부터 다시 경선 일정에 참여하기로 했다.
▼ 非朴 “공천비리땐 박근혜 후보 사퇴를” 朴 “공천위 독립적 운영… 사퇴 부적절” ▼
이날 극적 합의는 박 의원과 황 대표가 비박 후보들의 요구를 일정 부분 수용하면서 이뤄졌다. 비박 후보들은 3일 경선 참여의 전제 조건으로 △황 대표의 사퇴 △중립적 인사가 중심이 된 진상조사위 구성 △4·11총선 공천 과정에 대한 철저한 검증 △공천 비리 재발 방지책 마련 등을 요구했다.
이어 5일에는 연석회의에 앞서 “공천헌금이 사실로 드러나면 박 의원이 대통령후보를 사퇴해야 한다”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비박 후보 3인은 기자들을 만나 “비리와 부패의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데 특정인의 (대선후보) 당선을 위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있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2시간가량 진행된 연석회의에서도 비박 후보들은 같은 주장을 폈다. 이에 박 의원은 “공천위를 구성하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독립적으로 해왔다. 2004년 당 대표 시절 중진들의 부패 사건이 터졌을 때 바로 수사 의뢰를 했다”며 “후보 사퇴는 적절치 못하다”고 맞섰다.
비박 후보들은 이 자리에서 3일 황 대표의 사퇴 등을 요구하며 경선 일정을 보이콧하자 박 의원이 “당을 망치는 일”이라며 공격한 것에 대해서도 성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의원은 연석회의 내내 주로 비박 후보들의 얘기를 듣고 있었다고 한 참석자는 전했다. 또 회의를 마치며 ‘합의 사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다른 참석자의 질문에도 특별한 언급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고 한다.
박 의원은 연석회의 직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누리꿈스퀘어에서 열린 20대 정책 토크에서 공천헌금 파문에 대해 “사실 여부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이런 의혹이 얘기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참 안타깝고 국민들께 송구스럽다”며 “만약 제가 책임을 맡은 자리에 있다면 더 엄격하게 처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천 잡음에 사실상 사과의 뜻을 밝힌 동시에 지금 이 상황에서 자신이 책임질 문제는 아니라는 인식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20대 정책 토크에는 박 의원과 안 후보 등 2명만 참석했다. 하지만 경선 파행 이틀 만에 비박 후보 3인이 경선 복귀를 선언하면서 6일 서울 합동연설회부터 경선 일정은 정상화됐다. 비박 후보들이 벼랑 끝 대치를 하다 이틀 만에 태도를 바꾼 데 대해 당내에선 비박 후보들이 상당한 압박감을 느꼈기 때문으로 풀이한다.
당장 비박 후보들 캠프에서조차 경선 일정 보이콧은 마지막 카드인데 처음부터 꺼내들면서 진정성을 의심 받게 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연석회의에서도 김수한 위원장은 비박 후보들의 경선 일정 보이콧에 강한 유감을 전했다. 5일 초선의원 50여 명과 원외 당협위원장협의회는 각각 성명을 내 경선 일정 파행을 비판했다. 여기에 공천헌금 의혹의 실체가 아직까지 모호한 상황에서 계속 강공책을 밀어붙일 동력을 찾기 힘들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그렇다고 비박 후보들의 유턴이 박 의원과 비박 후보들 간의 화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불신이 더 깊어진 측면도 있다. 당장 연석회의가 끝난 뒤 박 의원이 ‘(공천헌금 파문에 대해) 책임질 일이 없다’는 말을 했는지를 두고 공방이 벌어졌다.
임 후보는 연석회의 뒤 기자들을 만나 “오늘 놀라운 것은 (총선 공천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이었던 박 의원이 ‘책임질 일이 없다’고 인식한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박 의원이 책임질 일이 없다는 입장을 명확히 밝혔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임 후보는 “그렇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 의원 캠프의 이상일 대변인은 “박 의원에게 확인한 결과 ‘책임질 일이 없다’는 발언은 없었다”고 반박했다. ‘박근혜 책임론’ 공방이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당내 내분도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공천헌금 의혹의 당사자인 현영희 의원과 현기환 전 의원에 대한 탈당 문제만 하더라도 당 지도부가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현 전 의원은 이날 기자들을 만나 “돈이 오고갔는지 진실을 규명하는 게 당을 위한 최선의 길이지 (내가) 탈당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진실 규명에 무슨 도움이 되느냐”며 탈당을 거부했다. 비례대표인 현 의원도 탈당을 하면 의원직을 잃게 돼 마지막까지 버틸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김영우 당 대변인은 4일 전격 사퇴했다. 표면적으로는 “경선을 잘 끝내고 본선을 준비하는 데 당이 총력을 모아야 한다”며 당의 단합을 사퇴 이유로 제시했지만 당 내분 사태를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황 대표의 사퇴를 압박하기 위한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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