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 추경 줄다리기 뒤엔 친이-친박 ‘앙금’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9일 03시 00분


“이번에도 친이(친이명박)-친박(친박근혜) 갈등이냐.”

정부와 새누리당이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여부를 놓고 줄다리기를 벌이자 여권 주변에서 종종 들리는 말이다. 새누리당을 장악한 친박 핵심들은 경기 활성화를 위해 추경을 요구하지만 친이계가 핵심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청와대와 경제 부처에선 재정건전성을 이유로 반대하기 때문이다.

특히 친박 진영에선 대선을 앞두고 ‘장바구니 민심’이 악화될 경우 여당 후보에게 책임론이 쏠릴 수 있는 만큼 정부를 원망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이미 6월 “추경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밝힌 이 대통령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청와대 관계자는 전한다. 김대기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 등 청와대 경제 참모들도 대부분 추경에 부정적이다.

친박 핵심인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6일 “‘하우스푸어’ 등은 국민경제의 장기 침체 원인도 된다. 추경 가능성을 적극 검토해 달라”며 정부에 추경을 공개 요구했다. 다른 친박 핵심 관계자도 8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내수 침체를 해소하기 위해선 5조∼6조 원 규모의 추경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당에 형성돼 있다”며 거듭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러나 ‘MB노믹스 지킴이’를 자처하는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7일 “지금 상황이 추경 요건에 해당하느냐에 대해 신중한 입장”이라고 말한 데 이어 8일 세법개정안을 발표하면서도 “내수 활성화를 지원하면서도 재정건전성을 유지하려 했다”며 추경 불가론을 거듭 밝혔다. 이날 세법개정안을 논의한 당정협의에선 추경이 거론되지 않았다고 한다.

친박계는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내고 있다. 한 핵심 인사는 “이 대통령의 지적대로 현재의 경제위기가 2008년보다 더 심각할 수 있는데, 추경 외에 정부가 내놓을 대책이 있느냐”고 쏘아 붙였다. 그러나 정부 핵심 관계자들은 “당이 상황을 잘 모르고 있다”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친이계로 분류되는 정부 고위 관계자는 “지금은 추경을 하기엔 늦었고 내수 진작을 위해선 새누리당 주장보다 더 많은 10조 원 이상의 추경이 필요한데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논란을 감수하면서까지 추진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물론 대선을 앞둔 만큼 새누리당이 작심하고 밀어붙인다면 추경은 이뤄질 수 있다. 더욱이 민주통합당도 추경을 주장하고 있고 경제상황이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다. 실제로 이 대통령은 6월 “(한국 경제가 올해) 아마 3% 이상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지난달 한국은행은 올해 성장률이 2%대로 추락할 수도 있음을 시사한 바 있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추경#당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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