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닥속닥 밀실 공천, 비례대표 잡음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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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8월 11일 03시 00분


“비례대표 공천심사에 참여하지 않은 나는 공적인 책무를 다하지 못한 오점을 남겼다. 그러나 후보명단에 대한 논의가 있더라도 시간이 촉박하다는 이유로 진행되는 통과의례에 동참하고 싶지 않았다. 나의 한계를 깨달은 이상 내가 할 수 없는 큰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않기로 했다.”

18대 총선 공천 작업이 한창 진행되던 2008년 3월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의 한 공천심사위원이 비례대표 공천 심사 과정에 참여하지 않겠다며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던 글이다.

당시 한나라당 비례대표 공천 리스트는 소수의 실세 공천위원들이 밀실에서 만들었다는 게 당 안팎의 정설이다. 당 관계자는 “역대 비례대표 공천과정을 보면 박세일 비례대표 공심위원장이 직접 공천했던 2004년 이외에는 모두 하늘에서 명단이 내려왔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실제 여야 모두 총선 때마다 비례대표 공천 잡음은 끊이질 않았다.

비례대표는 사회적 약자나 전문가의 국회 입성을 위해 도입된 제도다.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와 각계 전문가를 비례대표 상위 순번에 배치하는 게 비례대표 취지에 맞다. 새누리당은 19대 총선 때 이자스민(다문화), 조명철(탈북자) 의원 등을 비례대표로 당선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사회적 약자나 전문가라는 기준이 애매하기 때문에 당 지도부나 계파 수장의 입김이 들어가거나 부정·부패가 개입될 소지는 얼마든지 있다. 정치권에서는 “유명인이나 전문가가 아닌데 상위 순번에 이름 올린 재산가가 있다면 일단 의심하는 게 정상”이라는 말이 나온다.

새누리당은 19대 총선 비례대표 공천 심사 때 국민배심원단 제도를 도입하고 분과를 세분화하는 등 체계화된 검증 시스템을 거쳤다고 말한다. 그러나 비례대표 공천 신청을 하지도 않은 인사가 공천을 받거나 현영희 의원의 공천 과정을 공천위원들이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등 ‘보이지 않는 손’의 작동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비례대표 공천 과정에서는 후보 면접도 생략했다.

민주통합당의 19대 총선 비례대표 공천도 특정계파(친노)의 끼워 넣기, 전문성보다는 이념 위주의 공천으로 비례대표 도입 취지가 퇴색됐다는 비판이 많았다.

서울대 강원택 교수는 “사회적 약자나 전문가를 공천하는 비례대표는 공천 이유가 다 다르기 때문에 획일적인 기준을 정해 평가하는 게 쉽지 않다”면서도 “심사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리스트에 대해 당원의 추인을 받는 과정을 거치는 등 보완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비례대표#공천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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