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후보 “부모님 갑자기 잃어봐서 얼마나 가슴 아플지 알아”
권양숙 여사 “대선 출마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아” 위로에 화답
“사실 우리도 놀랐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가 21일 첫 공식 지방방문 일정으로 경남 김해 봉하마을의 고 노무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박근혜 캠프의 한 관계자는 “앞으로 더한 파격 행보가 계속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봉하마을 방문은 박 캠프 내에서도 소수의 핵심 인사들만 미리 알고 있었고, 노무현재단 관계자들도 언론 보도를 보고 알았을 정도로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봉하마을 방문은 캠프 참모들이 보고한 일정 중에 포함돼 있었지만 첫 행보로 결정한 것은 박 후보 자신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 후보의 첫날 일정은 온통 이념을 떠난 국민대통합과 ‘100% 대한민국 실현’에 맞춰졌다. 박 후보는 이날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초대 이승만 전 대통령과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 아버지의 정적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을 차례로 참배했다. 박 후보가 김 전 대통령 묘역을 찾은 것은 처음이었다. 박 후보는 현충원 방명록에 “호국영령들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국민대통합의 새로운 시대를 열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이 자리에서 박 후보는 오후 일정을 묻는 기자들에게 “봉하마을 노 전 대통령을 뵈러 간다”고 공개했다. 이어 “대한민국의 한 축을 이루고 계신 전직 대통령이시기 때문에 참배드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후보는 생전의 노 전 대통령과 정치적 대척점에 섰다. 노 전 대통령의 ‘대연정 제의’를 “노선이 다르다”며 거부했고, 노 전 대통령이 개헌을 제의하자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쏘아붙이기도 했다.
2009년 5월 노 전 대통령 서거 당시 봉하마을 입구까지 조문을 갔지만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거센 반대로 발길을 돌렸던 박 후보에게는 첫 봉하마을 방문이었다. 박 후보는 묘역을 참배한 뒤 노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를 예방해 20분 동안 대화를 나눴다.
박 후보는 “옛날에 제 부모님 두 분이 갑자기 돌아가셔서 얼마나 힘든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권 여사님이 얼마나 가슴 아프실지 그 마음을 잘 이해한다”고 위로했다. 이에 권 여사도 “이 일(대선 출마)이 참으로 힘들 일이다. 얼마만큼 힘들다는 걸 내가 안다”며 “박 후보가 바쁜 일정에 이렇게 와 주시니 고맙다. 건강을 잘 챙기시라”는 덕담으로 화답했다.
이날 박 후보의 행보는 정치권에서 하루 내내 거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야권 내에서도 서로 다른 목소리가 나왔다. 김 전 대통령의 측근인 민주통합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에서 두 전직 대통령 묘역 참배에 대해 “감사의 표시를 한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 출신이며 대선 주자인 민주당 문재인 의원은 “형식적 방문이 아닌 과거 상처를 치유하고 국민 화합을 도모하는 진정성을 가졌으면 한다”면서도 “(노 전 대통령 묘역 참배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반면 민주당 정성호 대변인은 “노 전 대통령은 이명박 정부와 정치검찰에 의해 돌아가셨다”며 “집권여당의 대선후보로서 진정한 사과와 반성 없는 전격적인 방문은 보여주기 식 대선 행보에 불과하며 유가족에 대한 결례”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 홍일표 대변인은 “전직 대통령의 묘역은 특정 정파의 배타적 관리구역이 아니다. 모든 국민이 원한다면 원하는 때에 언제든지 자유롭게 방문해 참배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국민대통합을 염두에 둔 박 후보의 폭넓은 일정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박 후보는 22일 김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도 예방한다. 박 후보는 2004년 8월 서울 마포구 동교동 김 전 대통령 사저를 찾아 “아버지 시절에 많은 피해를 보고 고생한 데 대해 딸로서 사과드린다”고 위로했고 김 전 대통령이 서거 전 병상에 있을 때도 문병했다.
아울러 박 후보는 22일 김영삼 전 대통령을 방문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방문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박 후보는 김영삼 전 대통령과는 최근 불편한 관계였다. 박 후보는 전직 대통령들을 예방한 뒤 종교 지도자들을 만날 예정이다. 박 캠프 관계자는 “(박 후보가) 국민 대통령을 반드시 해보겠다는 뜻을 실천으로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