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에서 평양까지 꼬박 5박 6일이 걸렸다. 평양은 물가가 너무 올라 일반 사람들은 물건을 살 형편이 못 되고 부업을 하지 않으면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다.”
함경북도 청진에 사는 50대의 김미선(가명·여) 씨는 최근 평양 방문 소감을 이렇게 전했다. 동아일보는 7월 11일부터 25일까지 청진∼평양을 기차로 다녀온 김 씨의 방문기를 중국 소식통을 통해 입수했다. 김 씨는 북-중 보따리 무역을 하는 남편을 두고 있으며 평양에 친정이 있다. 다음은 방문기를 발췌한 내용.
평양행은 여행증명서와 차표 발급 등 첫 단계부터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인민반(주민통제조직)부터 보안서(경찰서)까지 단계마다 뇌물을 달라고 했다. 북한에선 여행증명서 없이 여행을 할 수 없다. 특히 김일성 사망일(7월 8일) 직후여서 평양 유입인구 통제가 엄격한 탓에 기차표도 ‘아는 사람’이 없으면 구입이 불가능했다. 증명서 발급에만 뇌물 100달러가 들었고 열차표는 국정가격의 10배인 1만 원을 주고서야 구할 수 있었다. 북한 근로자의 평균 월급이 3500원 내외인 것에 비춰 엄청난 바가지였다.
7월 11일 오전 10시 열차에 올랐다. 총 12량 가운데 1량뿐인 침대차는 이미 간부들 차지였다. 주민들은 콩나물시루 같은 일반 객차에 밀려들었다. 사람 냄새와 땀 냄새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여행증명서와 표 검사를 하는 승무원이 사람들과 뒤섞여 아수라장이 됐다. 승무원은 과거처럼 위반자들을 집결소로 데려가기보다 무조건 벌금을 물리려 했다. 역마다 증명서와 차표를 검열하는데, 돈벌이에 혈안이 된 것 같았다.
열차는 더뎠다. 청진을 떠난 기차는 김책역도 못 가 벌판에서 멈췄다. 정전 때문이다. 연료 부족 문제가 심각한 북한은 대부분 기차가 전철이다. 기차는 그렇게 40시간을 서 있었다. 간간이 차 안에 매대(판매대)가 오갔으나 너무 비싸 물이나 음식을 사먹을 엄두를 못 냈다.
김책 범포 용반 등 역마다 연착한 열차는 16일 오후 신성천에 도착하고서도 30분에 한 번씩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평양과 인접한 간리부터는 10분이 멀다하고 검열이 이뤄졌고 사람들이 녹초가 됐을 때쯤 기차는 평양역에 우리를 내려줬다. 온몸에 소금기가 돌아 끈적거리고 감자 외엔 먹은 게 없어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었다. 평양과 청진을 잇는 ‘평라선’의 총연장은 781km. 꼬박 6일(144시간)이 걸려 평양에 도착했으니 평균 시속 5.4km로 달렸다는 계산이 나온다. 걷는 속도보다 조금 빠른 셈이다.
삼석구역에 있는 친정은 2년 전 왔을 때와 달라진 게 없었다. 평양도 중심구역을 제외하고 전기·물 공급이 제때 이뤄지지 않고 김정일 사망 후 물가가 치솟아 삶이 팍팍했다. 평양에서조차 가정집 베란다에서 돼지를 키우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한다.
어렵게 도착한 친정이지만 오래 머물 수 없었다. 22일 귀로에 올랐다. 이번에는 차표 값 7000원이 들었다. 7월 22일 평양을 떠난 기차는 200여 km 떨어진 고원역까지 하루가, 청진까지 만 3일이 걸렸다. 열차에 빈자리가 없어 서서 오다 보니 발이 부어 신발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을 지경이었지만 잃어버릴까봐 벗지도 못하고 꺾어 신고 버텼다. 몇 시간이면 갈 거리가 보름이나 걸렸으니 여행을 한번 하자고 해도 고통스러워 할 수가 없다. 앞으로 언제 또 평양에 다녀올 수 있을지 엄두가 나지를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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