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향하는 경제민주화는 새로운 부를 지속적으로 창출하고, 모든 사람에게 기회가 열려 있는 사회, 더불어 잘사는 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한국의 경제개발에서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해 온 전직 경제 각료들이 최근 정치권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경제민주화에 대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냈다. 한국선진화포럼이 25일 서울 중구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경제민주화에 관한 전직 경제장관 토론회’에서다.
선진화포럼은 이사장인 남덕우 전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2005년 설립돼 전직 각료, 교수, 기업인 등 각 분야 원로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전직 경제 각료(일부 비경제부처 각료 출신도 참석)들은 박정희 정부부터 노무현 정부까지 고루 섞여 있어 눈길을 끌었다.
○ 정치권 경제민주화 논의에 우려
참석자들은 “요즘 모든 주장을 민주화라는 말로 포장하면 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정치인들이 대선 전략으로 경제민주화를 높이 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경제민주화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말하지 않고 ‘대기업 때리기’에 열중하고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들은 헌법 119조에 담긴 경제민주화의 뜻은 성공한 사람을 끌어내리고 가진 자의 부를 빼앗아 나눠 주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참석자들은 대기업이 문제가 있다고 무조건 대기업 때리기로 흘러서는 안 된다는 데 공감했다. 이용만 전 재무부 장관은 “사회 자체가 구석구석 변화한 만큼 대기업도 운영 방식 등 변화해야 할 것은 많다”면서도 “정부의 지나친 개입으로 기업 활동이 위축되거나 투자의욕이 저하돼 기업들이 하향 평준화되면 대·중소기업 모두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부자를 가난하게 만든다고 해서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한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의 말을 되새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승윤 전 경제부총리는 “최근 경제민주화 논의는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이라며 “기본적으로 양극화 심화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영향인데 대기업이 양극화의 주범이라고 보는 것은 안일한 인식”이라고 진단했다.
몇몇 참석자는 정치권이 경제민주화 요구를 내세우도록 빌미를 준 일부 대기업의 잘못된 행태도 따끔하게 지적했다.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의 불공정거래를 비롯해 우리 경쟁질서 자체가 불공정한 측면이 크다”며 “현행법과 제도만 제대로 운영해도 중소기업 인력 빼가기와 같은 대기업의 부조리한 관행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진념 전 경제부총리도 “지금 경제민주화가 정치적 레토릭(수사)에서 출발했지만 왜 많은 국민이 관심을 갖는지 행간을 읽어야 한다”며 “대기업집단은 국가경제 대표선수로서 세계경제 챔피언으로 나가야 되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구태를 못 고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경제민주화 청사진 제시
최종찬 전 건설교통부 장관은 선진화포럼 회원들의 의견을 모아 △대기업집단(재벌) 규제 속도 조절 △일자리 창출 △양극화 해소 △사회보장제도 확충 등 4가지 분야별 정책 제안을 했다. 최 전 장관은 “대기업집단의 행태가 여러 문제가 있지만 이들이 비대해진 것은 소비자 선택과 산업구조 변화의 결과”라며 “무조건 대기업 탓만 하기는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어 “대기업의 폐해는 시정하되 출자총액 제한제도, 대기업의 순환출자 금지와 같은 제도 도입에는 신중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다만 대기업은 자정 노력을 강화하고 자영업자의 골목상권까지 침투하는 등 탐욕스러운 행태는 자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 전 장관은 현재 국내 경제의 최대 현안인 일자리 창출과 관련해서는 서비스업의 진입장벽 철폐, 부실 대학 구조조정, 노동시간 단축 등을 추진해야 한다고 제언했고 양극화 해소를 위해 중소기업의 부품 및 소재 생산을 적극 지원하고 부동산 경기 부양, 가계부채 구조조정 등을 실시해야 된다고 주문했다.
특히 진 전 부총리는 복지문제와 관련해 “보편적 복지는 안 되고 선택적 복지를 해야 한다는 식의 흑백논리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며 “출산, 육아 등 성장잠재력을 확충할 수 있는 복지분야는 보편적 복지로 가되 반값 등록금과 같은 정책은 보편적 복지에 맞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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